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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Feb 12. 2022

그날의 공연

- 결국 나의 대학 입시 작품도 지젤이 되었다! -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도 그랬다. 내가 극장이라는 장소를 통해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처음 보았던 공연은 국립발레단의 제60회 정기공연 <지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용 감상 시간에 어느 외국 발레단의 <세레나데>를 교실에서 친구들과 떠들며 비디오를 시청했던 기억이 전부이었던 나는 입시를 앞두고 부전공으로 발레를 배우던 학원에서 단체로 정식적인 발레 공연을 처음으로 국립극장에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특별한 기대도 없이 숙제처럼 의무감으로 봐야 했었던 공연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친구들과의 수다가 더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공연 시작종이 울리고 무용수들이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은 망치로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설렘과 떨림이 갑자기 내 마음을 휘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도대체 뭔데 내 가슴을 이렇게 울리는 거지?" 라며 1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리다 결국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어떤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 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휘둘린 정체불명의 감정에 대해 세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을까? 그날 그 공연을 보고 난 뒤, 나는 연극영화학과 가고자 했던 진로를 선회하고 무용학과에 진학해 발레를 전공하게 되었다. 이후,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하게 되면서 '한국 발레의 역사와 사람들'이라는 카테고리를 정하고 국립 예술자료원에서 오래전부터 발행된 고서와 무용잡지 및 글들을 오랜 시간 읽고 메모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런 일들을 준비한다는 말이 학교에 돌기 시작했을 때 추천해 주신 분 외에 많은 분들은 격려보다는 걱정과 염려를 더 하셨지만 무엇보다 "라면을 먹더라도 이 일은 10년을 채워서 준비해야 된다"는 말은 예술계 석학들께 여러 번 듣곤 했었다.  

  젊은 나이 시작한 일이어서 훗날 짊어질 세월의 무거움을 몰랐고 그만큼 세월이 화살보다 더 빠르게 가는 것도 몰랐으며 무엇보다 굶더라도 이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해야 된다는 그 말의 진심을 이해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돈을 알고 나면 예술가는 진짜 예술을 하기가 힘들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자료원 도서관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며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고 점심값이 없어서 점심을 건너뛰어가며 책을 읽었던 그 순간들이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젊은 한 순간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자  나 자신에 가장 떳떳한 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내가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주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한다. 그날의 공연은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공연보다 강렬하고 짜릿했으며 내가 이 길을 가는데 가장 큰 이정표가 되어준 공연이기 때문이다. 공연 감상을 통한 성장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은 길고 지루했으며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 시간을 잘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보다 그 일 자체를 좋아해야 하고 또한  그 일을 즐기면서 할 줄 알아야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 가슴이 깊이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예술가의 자부심과 인내 또한 쉽게 얻어지는 열매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릇 '문화'라는 것은 가장 낮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때만이 관객에게 그 깊은 속내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견과 오만으로 찌든 마음으로 바라보는 다른 문화는 그저 이방인의 습속에서 가득 찬 기괴한 모습일 뿐이지만 마음을 열고 공연을 보는 가장 겸허한 자세의 접근자에게만 문화는 조심스레 아름다운 그 나신(裸身)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그 공연을 보기 전의 나는 발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보았던 거의 없었던 흰 도화지 같은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겠지만 결국 그 무지(無智)조차도 지금은 행복하게 기억할 수 힘은 어쩌면 아무런 편견 없이 가장 겸허한 마음으로 무대를 향해 바라보았던 10대 소녀의 순수한 마음과 진심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추신: 이 글은 2018년 국립발레단 오디세이(Audisay)에 당첨되어 올렸던 제 글을 제가 다시 발췌 및 수정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예전 노래가 그리운 날이 있는 것처럼 오늘은 이 글을 썼던 그날이 유독 기억나서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읽고 싶어서 글을 다듬어서 올리게 되었고 언제나 소리 없이 글 읽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늘 고개 숙여 진심 어린 감사 말씀 또한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올리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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