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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May 21. 2022

어떤 발레리나들의 특별한 우정

- 당신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발레리나가 있었다. 그녀를 오래전부터 공연장과 무대 위에서 여러 번 보긴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건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낼 만큼의 친분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나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며칠 전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만나준 그녀와 얼굴 보고 차 한잔 나눌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사실, 일 때문에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가 생각처럼 그 첫 포문을 잘 열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암묵적으로 느끼는 어색하고 불편한 기운을 이겨내며 이야기를 하고 그에 관한 설명을 잘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무대 위에서의 당찬 그녀 모습처럼 때론 귀엽고 때론 사랑스럽게 자신의 삶에, 자신의 일에 대해 자세하게 내게 상세하고 정확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대화가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집중할수록 혼자 듣기에 아까울 정도로 좋았다. 그러던 중 그날 그녀와 나눈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중에 하나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에 관한 말이었다. 어릴 적부터 같이 발레를 전공하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까지 같은 길을 걷는 자신보다 자신의 친구에 대해 얼마나 그녀가 괜찮은 사람인지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다툼도 없었던 그 친구에 관한 말을 할 때 진심 그녀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보았던 그녀들만을 알고 기억하고 있었던 내게 사석에서의 갖게 된 만남의 자리에서 술 한 방울도 안 마시고 저렇게 진지하게 자신보다 자신의 친구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그녀를 보니 그녀의 인생 또한 그 누구의 어떤 삶보다 찬란히 빛나고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의 한 구절에 수첩에 적힌 500명의 넘는 사람의 연락처보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알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2~3명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이 더 성공한 인생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삶이 아닌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과 함께 그 길을 걸어온 친구가 곁에 있었고  지금도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삶도 그렇게 영원을 꿈꾸며 남은 길 또한 같이 걸어갈 친구가 있는 삶이 남아있는 그녀가 진정 인생의 챔피언처럼 느껴졌다.   



                   

  예술가들의 삶도 잠깐 들여다보는 것과 변치 않는 마음과 눈으로 그 삶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비극인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한 그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렇게 짧은 시간이 아닌 강산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서로의 마음의 상처 없이 그렇게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신기했다. 인생이란 무대를 같이 걸어갈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예술가들의 삶 또한 아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어도 저렇게 자신의 친구를 자신처럼 사랑하며  이야기해주는 친구는 처음 만나서인지 그녀들의 우정이 더없이 특별함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그 대화 안에는 그 어떤 대화보다 진심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은 무대 위에서 그녀들이 주역이 아닌 이유로 덜 받은 박수도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의 나의 마음은 공연 주역에게 보내는 더 큰 박수와 환호보다 더 크게 브라보(Brovo)가 외치고 싶을 만큼  대단해 보였다.




  강산이 2번 넘게 변할 동안 지나온 세월 동안 보아온 친구의 모습에 사랑과 우정 그리고 깊은 신뢰가 있었고 요즘 들어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는 사람을 처음 보아서인지 가슴이 아릴 정도로 그녀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녀에게 진심으로 "내가 졌다!" 싶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내가 만났던 여러 무용수들 중에서 가장 깍듯하게 내게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대학원 졸업 부터 인터뷰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특별히 나에게 어떤 호칭을 불러주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주로 이름에 누구 씨를 붙여 불리던 나였는데 그날 그녀가 날 향해 불러준 호칭은 작가(作家)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 때문인지 나는 늘 그 표현에 대해선 남의 옷을 빌려 입고 걷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곤 했기 때문에  나도 그녀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는데 그녀의 깍듯한 호출에 앞으로 앞으로 정말 더 열심히 진실되고 담대하게 글을 써야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인지 2시간 동안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헤어질 때 부랴부랴 또 다른 장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어느 직업군이든 유명해서 더없이 많은 제약이 따르는 유명인의 삶보다 저렇게 한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열중하는 삶 또한 더없이 찬란하게 아름답게 소리 없이 빛날 수 도 있다는 깊은 깨달음 때문에 그 깊은 여운을 곱씹으며 생각하며 걸어오느라 걷는 내내 행복했고 즐거웠다. 지나온 삶처럼 남은 날들도 그녀가 지금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나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며 살아가게 될 거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서 그날 오후에 바라본 하늘처럼 그렇게 그녀들의 우정이 물들어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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