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승 Jun 15. 2022

극장이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 고집쟁이 딸( La fille mal gardee)을 보고 나서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이자 로맨틱 코미디 희극 발레


  프랑스 안무가 장 도베르 발(Jean Dauberval)이 1789년에 초연한 이 작품은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는 발레 레퍼토리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막(2막 3장) 발레로 그 위상이 대중적인 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부잣집에 딸을 시집보내려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생각에 반대하고 자신의 애인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인데 원작자인 장 도베르 발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유리가게 창문 너머로 시골의 작은 창고에서 혼나고 있는 딸과 그 딸의 애인이 도망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프랑스혁명 2주 전에 장 도베르 발이 만든 이 작품의 프랑스어 제목은  ‘La fille mal gardée(라 피유 말 가르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감시가 소홀했던 딸’이란 뜻으로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 작품은 리즈의 결혼, 고집쟁이 딸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안무가 프레드릭 애쉬튼(Frederick Ashton)이 이 작품을 안무할 때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지만 막상 무대 위에 작품이 올려지자 그의 고의 걸작이자 영국 로열 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도 했으며 애쉬튼은  닭들의 유머러스한 춤, 리즈와 콜라스의 리본 춤, 시몬의 나막신 춤, 농촌 처녀들의 댄스 등 사랑스러운 춤들로 안무했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나막신 춤이나 리본 춤 등은 애쉬톤의 독창적인 안무가 아니며 어머니인 시몬 역할의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로 춤을 춘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이 되기도 한다.




고집쟁이 딸 감상후기


  며칠 전 국립극장에서 희극 발레 <고집쟁이 딸>을 보았다. 2003년 10월 12일에는  사만타 던스터 (Samantha Dunster)가 안무한 버전으로 국립발레단이 예술의 전당에서 무대에 올렸을 때도 이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20년 만에 전막 발레로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무대 세트에서부터 느껴지는 편안함과 따뜻함, 평민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희극적 요소를 더해서 만들어진 즐거움 때문은 아닌가 싶다.

  비극 발레가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발레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유를 외치고 프랑스가 농촌의 번영을 꿈꾸던 시절, 서민 발레의 대혁명은 귀족의 발레가 아닌 평민의 발레를 등장하게 하였고 당시에 가장 유명하던 발레 마스터 장 도베르 발 (Jean Dauberval)이 안무했기 때문에 초연 이후에 여러 번의 변화를 가질 만큼 가장 많은 버전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희극 발레는 공연을 보는 내내 박수를 크게 치거나 브라보를 외칠 만큼 댄서의 춤에 함께 박자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고집쟁이 딸>만큼 좋아하는 발레 작품으로 <돈키호테 Don quxiote>가 있는데  돈키호테가 스페인의 열정을 담은 낭만 희극 발레이기 때문에 스페인 스타일의 전막 발레이라고 불린다면 고집쟁이 딸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던 사회 분위기로 인해 만들어진 평민의 발레로 유명해졌다. 다만 귀족의 이야기가 아닌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엄마가 딸을 부잣집에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로맨틱 결혼 해프닝이라는 가정을 설정한 점에서 보통의 발레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1막 1장에 나온 닭들의 춤과 신나고 경쾌했다. 리즈를 사랑하는 콜라스와의 연애도 잠시 자신의 어머니인 시몬의 반대와 그 반대에 맞서 등장한 부잣집 순수하고 순진한 아들 알랭의 모습과 알랭의 아버지인 포도밭 주인 토마스는 자신의 아들과 리즈를 결혼시키고 싶어 한다. 1막 2장에서는 농장 안에서 펼쳐지는 군무들이 압권이었고 2막에서는 1막에서의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쟁취한 리즈와 토마스의 해피엔딩으로 작품은 끝이 나는 스토리인데  이 작품은 홀어머니인 시몬의 춤은 주로 남자 무용수가 탭댄스 같은 박자의 춤을 추는 특이점도 갖고 있다. 남녀 파드되(pas deux)도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출 때 더없이 아름답지만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 보였던 부분은 조연으로 등장한 닭들의 춤 중에서도 닭들의 춤을 이끄는 발레리노 변성완의 코믹스러운 연기력이었다.  예전 발레 역사에서 우리 무용의 선구자 조택원이 학의 모양을 본떠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나는 사진상으로 봤을 때 그 춤의 느낌을 특별히 더 알만한 요소가 없었는데 이번 국립발레단의 고집쟁이 딸에서의 닭들의 춤과 움직임을 보고 조류를 통한 무용의 몸짓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비엔나 국립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레 마스터의 안무 지도자 장- 크리스토프 르사주(Jean-Christophe Lesage)의 안무로 올려진 이 작품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요즘 아이들의 삶을 반대해 자신이 어릴 적에 주로 가지고 놀았던 우산을 안무에 다뤘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는데 비가 내리던 날, 뛰어가서 우산들 들고 놀았던 추억, 비를 맞으며 춤을 추던 기억들 꺼내고 싶었다는 내용을 공연 팸플릿에서 읽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안무가인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내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핸드폰 중독되어 살아가는 삶이  누구보다 무척 아쉽다고 생각한다. 달큼한 여름향기, 창 밖의 풍경,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는 전혀 관심 없이 모두들 고개만 숙이고 폰에만 집중하는 부분이 나도 볼 때마다 아쉽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 안무자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은 우산 하나만으로 비가 올 때 뛰어다니며 놀던 그때의 순수한 감성을 이 공연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제대로  꺼내어보면 어떨까? 싶은 그의 진심이 묻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엔딩쯤에 보통의 발레 공연에서 보기 힘든 노래를 하거나 허밍을 하면서 무대 뒤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무자의 의도대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음악을 들으면서도 기분 좋게 자유롭게 테크닉을 구사하며 감정 전달과 스토리 텔링에도 집중해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는 허투루 볼만한 그 어떤 장면도 없다.

  물론 엄마 역인 시몬의 춤은 남자 무용수가 쉽게 표현해내기 힘든 섬세함을 통해 관객들에게 엄마의 몸짓이 너무 오버스럽지 않으면서도 설득력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의 중심에 엄마가 갖아야 하는 감정의 완급조절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리즈의 엄마로서 엄마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이해시켜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배역보다 중요한 역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중에 엄마가 리즈의 엉덩이를 때리는 희극적인 장면이 등장했을 때 현실에서의 나는 주로 엄마한테 까불다가 등짝을 맞곤 했다는 과거가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필립 앨리스의 지휘된 이 작품에서 특히나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 박슬기의 빛나는 열연과 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멋있어진 발레리노 허서명의 춤을 보는 것도 더없이 눈이 즐거운 무대이었다.  닭들의 춤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변성완의 몸짓도 오랫동안 기억에 날 거 같으며 엄마 역할의 시몬의 춤을 춘 배민순 발레리노의 춤은 더없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우리의 엄마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알랭 역의 선호현과 토마스 역의 송정빈도 국립발레단을 대표하는 발레리노로서 우리에게 더없이 멋진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물했기 때문에 국립발레단의 가장 빛나는 보석들의 향연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빛나지 않은 무용가들이 없었다. 그래서 국립발레단의 가장 큰 자산은 무용수들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고물가, 고유가 시대에 극장 나들이를 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시즌에도 극장을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무대에 올려진다.  미리 티켓팅을 하고 기다리던 날들이 지나고 무대 위에서 빛나는 댄서들의 춤을 보고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현장에서 듣다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있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많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하고 위로가 되는 밤을 선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출연 및 제작진 소개


* 음악 : 페르디낭 헤롤드 Ferdinand Herold

* 원작 : 장 도베르 발 Jean Dauberval

* 안무 : 프레데릭 애쉬튼 Frederick Ashton

* 편곡 : 존 랜치 베리 John Lanchbery

* 무대 &의상 : 오스버트 랭커스터 Osbert Lancaster

* 조명 : 장-피에르 가스케 Jean-Pierre Gasquet

* 안무지도 : 장-크리스토프 르사주 Jean-Christophe Lesage

* Production Supervised by : Jean-Pierre Gasquet

* 지휘 : 필립 엘리스 Philip Ellis

* 연주 :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Korean National Symphony Orchestra

* 단장 겸 예술감독 : 강수진 Kang Suejin

* 출연 : 국립발레단 Korean National Ballet                              

* 관람일: 2022년 6월 8일 저녁 7시 30분 국립극장

매거진의 이전글 그랑제테와 접영의 공통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