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가고픈 그랑제테
발레를 처음 배우러 가면 제일 먼저 5가지 포지션의 발 동작을 배워야 한다. 발레의 시작에서는 발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발 포지션을 제대로 배워야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몸을 푸는 림바링(Limbering)을 배우고 또 그다음엔 발레 바(Ballet bar)를 잡고 하는 기본 운동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시작부터 어느 정도의 기량을 얻기까지의 시간이 각자 다르긴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바로 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바(Bar)를 잡고 하는 기본 운동이 끝나고 나서 센터워크(Center work)라고 불리는 심화된 동작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발레가 얼마나 어려운 예술인지는 정면으로 깨닫게 된다. 시범 동작을 보면 바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나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연습실 한가운데 춤을 제대로 추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얼마나 다르게 움직이게 되는지를 연습실 거울을 통해 적나라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할 수 있다는 착각이 주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느낌이 들게 되면 실력만이 살 길이 된다는 생각은 당연히 저절로 들기 때문에 내가 나를 보고도 만족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연습실 안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 실망스럽지 않을 만큼의 어느 정도의 기본기는 갖추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하나의 동작을 잘하기 위해서 집중해서 쓰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아니 천재라도 수많은 노력을 통해서 잘하게 된다는 건 당연한 것이 되기 때문에 발레를 처음 배울 때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다 초급반이 넘어 중급반 정도의 실력이 될 때쯤 나도 나비처럼 날게 되는 그랑제테(Grand jete)로 배우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때 나는 정말 발레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저마다 좋아하는 동작이 다르고 무대 위에서 춤추며 빛나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같았겠지만 나는 연습실을 가로질러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그랑제테를 배우게 되면서부터 춤추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무대 위를 뛰어올라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그 느낌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저 초절정의 테크닉이기도 했겠지만 춤을 추던 그때 그 순간,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깊은 몰입과 집중의 정점에서 내가 나를 정면으로 보았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수영의 꽃은 접영.
몇 년 전에 우연히 마룻바닥이 아닌 시멘트 바닥을 장판으로 가린 무용 연습실 공간에서 발레 전공자라는 이유로 동작을 시범 보이다가 그랑제떼를 뛰어서 학부 때도 한 번도 안 다친 다리를 다치게 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 바닥이 아닌 곳에서 뛰었기 때문에 착지하는 순간에 발목에 심한 무리가 가서 아킬레스건이 절단되는 일이 생긴 건데 애당초 그런 바닥이었으면 선생님도 시범을 보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켰고 그런 상태인걸 모르고 나는 뛰었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큰 봉변을 당하게 된 상황이었다. 곧바로 병원에 갔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바로 수술하게 되었고 수술 후에는 당연히 속전속결로 재활치료도 함께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수영을 배우게 된 건 지금 와 돌이켜보니 어쩌면 내겐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재활을 목적으로 땅에 제대로 닿지 않는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운동 또한 수영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절인연처럼 운동도 인연이 맞아야만 잘할 수 있게 되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경우엔 수영도 발레처럼 처음 배울 땐 재미없던 시간들이 비로소 지나고 나서야 결국 잘하고 싶은 영법을 배우고 나서야 진짜 수영의 묘미를 알게 된 셈이었다.
무엇보다 접영을 배워보니 그랑제테와 많은 것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래서인지 접영 때문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부터 수영도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모든 게 전과는 달라졌고 기초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우게 되고 운동에 전보다 훨씬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쉽게 넘어갈 동작은 하나도 없었다. 연습실의 마룻바닥과 수영장에서의 물속에도 마주한 자신은 또 다른 나처럼 나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대로 하는 재미란 초보의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마주하게 된 진심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치료의 목적으로만 억지로 운동하던 때와는 달리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은 성실함의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보의 지루한 과정을 지나지 않고서야 운동의 묘미를 알게 된 건지 그 지루한 시간들을 이겨냈기 때문에 수영이 좋아진 건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으나 아무튼 결론적으로만 본다면 지루한 시간을 지난 후에 맞이한 감로주의 술잔 같은 달콤함은 거저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잘하면 더없이 재미있는 그랑제떼와 접영
앤더스 에릭슨(K.AndersEricsson)이 주창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데 소질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까지 걸리지 않더라도 잘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 운동과 예술이 주는 특별함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시간에 집중하고 노력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없지만 잘할 수 있는 사람도 지극히 소수라 결국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흉내를 내는 일 역시 진심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한 답가이자 끝없는 노력이 주는 선물 같은 일은 결국 나로 시작해 나로 위안받기 때문이다.
무용 연습실에서 느꼈던 차가운 공기와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서 춤을 춰야 했을 때 나는 예술이 생각보다 참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연습으로 극복되고 정성에 정성을 더하면 더없이 아름다워지는 그 어떤 결정체를 자신이 마주하게 되면 얼마나 연습에 집중해야 하는지.. 인생을 살면서 거저 얻는 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재활의 목적만으로 수영을 배웠더라면 나는 접영이 주는 즐거움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날것의 느낌이 가장 셌던 초보 시절이 지나 어느 정도의 실력과 테크닉을 소화해 내서 보면 결국 집중력을 통해 내가 얻었던 춤과 수영은 결국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게 자신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되면서 결국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노력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사는 건 참 녹록지 않으나 하나하나씩 배우면서 알게 되는 인생의 진짜 깊은 맛을 알게 하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살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