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가장 달라진 풍경 중에 하나는 주말에 쉬면서 편하게 골라서 시켜 먹을 수 있는 배달 음식이 주는 편리함보다 가족들을 위해 더 고생스럽고, 수고스럽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특식' 준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부들은 상대적으로 더 피곤하기도 하다. 물론 나도 내가 만들지 않는다면 나도 누가 뭘 만들어줘도 "잘 먹겠습니다~"하고 그냥 젓가락 들고 먹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현실은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사는 이 평범한 가정집에서의 특식 준비자는 결국 내가 되어야 할 운명인 셈이라 나만 조용히 꾹 참고 주방에 들어가서 준비한 음식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이 문제는 누가 강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고생스럽더라도 내 한 몸 부대껴서라도 만들어서 주고 이 특별한 메뉴의 식사의 준비 때문에 피곤한 마음 반, 먹으면 어차피 한 입이라 식구들 얼굴이 떠올라도 그냥 편하게 시켜 먹고 싶은 마음 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만든 지난주 음식은 '무늬만 떡볶이'이었다.
며칠 전에 예전 드라마 한 편을 몰아서 보고 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에게 "떡볶이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닌데? 여자라고 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남들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하고 혼자서 대답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떡볶이 말고 라볶이나 쫄볶이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라는 식의 다른 버전의 대답들만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혼자서 웃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지 떡볶이가 아니라 라볶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 건가? 라며 잠정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다.
물론 나는 떡보다 면을 더 좋아하나 보다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물어보지도 않는 질문에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는 게 좀 웃기기도 했었다. 아무튼 드라마 때문에 급 만들게 된 이 음식 때문에 주말의 메인 요리사가 되어 주방에 들어갔다. 나와는 달리 떡볶이를 아주 좋아하는 남편과 우리 아이는 언젠가부터 쌀떡과 밀떡 사이에서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닌 냉동실에서 숨어있는 떡국떡을 넣어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 재료준비를 시작했는데 당면을 불리고 계란을 삶을 때부터 '우리 집 즉석 떡볶이'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던 셈이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야채나 재료들이 훨씬 더 들어가서 이걸 떡볶이라고 불러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뭐가 들어가는 것보다 함께 먹는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이 번거로움을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으로 여기고 만들게 되면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해서 나까지 무조건 좋아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어?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나 여자들이 그렇게 대부분 좋아한다는 이 음식을 두고 내가 그녀들만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답을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녀들만큼 좋아하고 즐기지 않는 것뿐이지, 뭐 다른 사사로운 감정이 있겠어? 싶은 마음 반, 꼭 떡이 메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하고 다른 버전으로 고추장으로 음식을 만드는 게 또 뭐가 다른 문제가 되겠어?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조금은 생기기도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내 마음대로 만드는 떡볶이는 빨간 고추장 양념과 골고루 들어간 양배추와 어묵 그리고 불린 당면들은 저마다의 맛을 뽐내기 위한 팬 아래 조용히 숨 죽이고 더 맛있게 양념이 베이도록 기다리고 있겠지만 예의상 떡볶이라 불리니 떡국떡을 넣은 나로서는 이게 무슨 떡볶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냥 야채 고추장 볶음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을는지도.... 그 와중에 화룡정점처럼 숨어있는 삶은 계란은 어쩌면 오스카 여우 조연상급의 출연이라고 해야 했을까?
주말 특식이 주는 여유
주말 특식이 주는 여유도 참 좋은 것이지만 무엇보다 편안하게 먹는 밥 한 끼의 위로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부터인지 우리는 마른 몸을 선호하고 끼니를 굶어가면서까지 예뻐질 궁리를 하기 때문에 밥 세끼를 먹고 날씬하려는 마음이 반칙이라고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식당을 가도 밥을 남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도 하고 밥을 제 때 안 먹고사는 거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도 예전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모여놓고 보면 절대 안 먹고 안 움직인다고 해서 건강이 좋아지거나 좋은 예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경험해 보면 알게 된다. 특히나 나도 그랬다. 다른 해 보다 올해는 몸이 좀 아팠었다. 아픈 것도 걱정스러운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는 게 무척 힘든 일이 되면서부터 생각보다 그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새삼스레 매일같이 제시간에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들도 달라 보이고 좋아 보이고 즐겁고 행복한 일처럼 느껴져 부럽기까지 했었다. 도대체가 좋지 않은 컨디션도 문제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돌아오지 않는 입맛을 찾아내기가 생각보다 어렵고 쉽게 찾기 어려워서 노력을 요하는 순간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밥 먹기가 너무 싫다고 생각하니 하루에 한 끼 정도 겨우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고 혹시라도 조금 더 욕심내서 먹는 날엔 부대껴서 하루종일 몸이 더 고역이었다. 밥을 시간 맞춰 잘 먹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했던 그때 나는 출장 나간 입맛을 어떻게 찾아내는 게 관건이라면 관건이었겠지만 이미 입맛이 도망가고 나면 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것만큼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먹는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탄순화물 중독자처럼 밥을 제일 먹고 싶어 하던 내가 한번 입맛이 나가고 보니 밥을 먹는 일이 제일 고되고 힘들었다.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밥을 다 안 먹다니..."라는 소리를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일이 막상 현실이 되어 눈앞에 바로 일어나는 일이 되고 보니 억지로 라도 수저를 잡고 밥을 떠서라도 한 입이라고 조물조물 씹어서 먹고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역스럽기도 했었다.
떡볶이보다는 볶음밥!
탄수화물은 죄가 없지만 탄수화물을 애정하는 사람에게 볶음밥을 거절할 명분이란 게 있긴 있을까? 무늬만 떡볶이를 만들고 넉넉하게 남은 고추장 소스에 날치알과 김가루 그리고 흰쌀밥을 섞어 열심히 볶아서 프라이팬 통째로 들고 와 마지막에 참기름 한 스푼을 넉넉하고 두르고 식구들과 맛있게 먹었더니 "인생사 뭐 있겠어?" 이른 저녁을 가족들과 이렇게 신나고 먹고 나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염려가 얼마나 하찮았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티베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라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이 위대한 일은 우리 중에 누군가는 쉽게 져 버리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건강하게 사는 건 이런 하루들이 모여서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맛있는 한 끼의 위대함이 아닐는지.... 생각이 들었던 지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