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제게 알려준 인생의 깊이와 밀도(密度)에 대하여..
어쩌면 우리에게 억겁(億劫)의 시간이 지나갔던것이겠죠?
돌이켜보니 그녀와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보통은 누구든지 간에 어느 정도 기억나는 첫인상이 있거나 아니면 아주 강렬한 어떤 이미지가 있는데 그녀와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첫인상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유는 저의 경우에는 말이 없던 그녀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사를 웃으면서 나누었고 간단한 스몰토크를 약간 한 다음에 연습에만 몰두하는 그녀를 기억하는 건 대부분의 무용가분들의 삶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서로가 어떤 대화도 먼저 꺼내지 않을 만큼 서로가 말이 없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공간과 상황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관객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과의 삶과는 다르게 저는 무용가들의 인생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남들보다 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무대 위의 그들의 춤을 보고 공연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접 듣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놓고 유추해 봤을 때 그 시작점을 기준점으로 정해놓고 봐야 한다면 서로가 웃으면서 간단한 목례만 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말없이 지내던 시절들이 돌이켜보면 그 누구보다 훨씬 길고 길었던 건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꽤 흐른 뒤에 알게 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정확히 딱 10년 전 겨울, 2016년 1월 초에 그녀를 만나고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역에서 한번 환승을 해야 집에 갈 수 있는데 타야 할 전철을 타지 않고 그냥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던 그 밤에 저 혼자 괜스레 나는 왜 이 일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을까? 하며 눈물을 훔쳤던 그날이 오늘은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왜 눈물이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서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제 기억이 맞다면 그저 왜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까? 싶은 그런 마음이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듯 너무 많이 불었고 그래서 그 주체되지 않았던 감정 앞에서 스스로 무너진 자신을 정면으로 봐야 했던 일이 무섭고 두렵웠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겨울이었고 그 이른 저녁밤길을 여자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연 있는 여자가 울면서 걸어가네 하고 여러 번 뒤돌아봤을 정도로 그렇게 울면서 걸었던 건 제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이 제가 사랑한 그 예술의 실체가 두려워서 발레의 비읍자도 꺼내지 않고 살아야 하나? 하면서 울면서 걸었던 제 모습이 오늘따라 선명하게 더욱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이 일을 잘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고 여전히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 하고 어쩌다 좋은 글과 제가 사랑한 무용가들이 무슨 말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마음이 드는 건 보면 제가 그날 진짜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그 반전(反轉) 앞에서 저는 당장이라고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건 제 인생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던거죠.
진짜 예술가가 되기 위한 태도에 관하여...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아니 발레 무용가가 되기 위해서 겪어내야 할 과정과 시간을 생각하면 그 힘듦과 인내와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조차 없이 자기 혼자 묵묵히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고 그녀가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유는 남들이 예술가가 되기 위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그 모든 평가와 결괏값에 대한 수긍과 인정은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판단이나 나의 노력 없이 타인들의 평가에 좌지우지한다면 예술가로서 나아갈 길을 제대로 가지조차 못 하고 넘어져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그 길을 걷기 위해 견뎌내야 할 그 모든 것들을 참아내고 이겨내고 그 안에 있는 결핍조차도 자신의 장점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절대적인 어떤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술이 예술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 자신이 헌신하고자 하는 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고통과 힘듦, 역경과 괴로움을 이겨낸 어떤 결과물값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편하고 쉽게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에 열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면서 예술가들에게 환호하고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그들의 고통을 직접 보지 않았어도 무대에서만 그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을지라도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 안에서 삶을 느끼고 알아가며 그 감정들을 통해 정화(淨化)된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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