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장장 5년에 걸쳐 집필한 이 장편소설은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인류 지상 최대의 선택이라는 결혼을 통해 이성과 욕망의 관계를 질문한다. 또한 러시아 농노제 붕괴부터 혁명에 이르는 시대를 걸친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작가 개인적인 사상을 통해 민중의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 두가지 핵심을 통해 무엇으로 살아가며,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놀랍게도 소설을 개방하는 첫 문장의 주체는 안나 카레니나가 아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스테판)의 불륜으로 인한 둘리에 대한 상실에 대한 기술이다. 이 불행한 가정을 구원해 주기 위한 도구로서 안나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마치 불행인듯 운명인듯 브론스키와의 만남이 사고처럼 일어난다.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나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을 감수하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이라는 명분하에 욕망을 선택한다. 안나는 솔직하다. 적어도 사랑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하는, 사랑할 줄 아는 주인공이다. 결국 이러한 지점들이 그녀를 결국 파멸의 길로 이르게 했지만.. 끝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는 조금은 무지했던 안나가 안타깝다. 안나의 선택이 어떠한 탈출구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안개는 바로 유년시절이 끝나가는 그 행복한 시기에 온갖 것을 가리고 있죠. 그러나 그 거대하고 즐거운 세계에서 나오면 앞길은 차츰차츰 좁아져요. 겉으론 밝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길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우리는 누구나 다 이런 길을 지나오기 마련이죠.'
'이러한 기쁨은 아주 고운 모래에 섞인 사금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나쁜 때에는 그저 슬픔만, 즉 모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또 기쁨만, 즉 금만 보게 되는 좋은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에 대한 그의 사랑을 사랑했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그 작은 배에 탔을 대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 갈 것인지를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저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깐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관통하는 불행한 가정이 안나의 모습이라면 행복한 가정은 또 다른 주인공, 래빈과 키티의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일반적인 지주의 이미지를 뒤집는 조금은 특이한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는 래빈은 키티와의 결혼에 성공하고 자못 행복한 생활을 이루는 듯 하다. 행복한 가정 덕분에 실존적 고민이 가능한 건지, 래빈이라는 캐릭터와 작가의 심적 변화인지 알 수 없지만 고만고만한 행복한 가정속 래빈은 다른 삶의 의미를 찾는다. 본인만의 삶의 의미를 깨달은 래빈은 키티에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생각에 들뜨지만 이내 말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러한 모습은 다시 이성과 욕망 사이의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결혼은 자기기만이라는 작가의 고유한 법칙은 이 부부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적어도 사랑, 이성,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류의 불완전함을 철학할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든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삶에 부여하는 의심할 나위 없는 선의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