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이한 사랑 이야기에도 감동을 부여하는 어떤 영원성.
1. 드레스
: 극 중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드레스는 3벌 등장한다. 의상 디자이너로 등장하는 레이놀즈가 어머니의 재혼을 위해 만든 웨딩드레스와 바바라 로즈에게 만들어준 드레스 그리고 벨기에 공주의 드레스이다. 레이놀즈는 어릴 적 재혼으로 자신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웨딩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이후 그와 함께 하는 강박을 평생에 걸쳐 돌려 받는다. 웨딩드레스를 만진 여자는 결혼하지 못한다는 저주를 마음에 새기면서도 저주의 걸쇠를 풀고 싶어 한다. 그의 결핍과 해소는 총 3벌의 드레스로 환기되고 드러나며 바바라 로즈라는 클라이언트로 인해 표면 위로 드러나고 감정적으로 표출된다. 레이놀즈의 어머니와 수평선상에 놓인 바바라 또한 2번째 결혼을 위한 드레스를 입었으며, 그의 상처를 알아본 알마는 바바라에게서 드레스를 뺏어온다. 걸어 잠긴 저주가 조금씩 깨지는 대목이다. 이후 레이놀즈는 벨기에 공주의 드레스를 제작하게 되고 드레스 안감에 ‘never cursed’라는 문구를 새겨넣는다. 이러한 일종의 의식은 레이놀즈가 지속적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옴에 해 오던 것이었고 스스로 저주받음을, 상처로 인한 강박이 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이 문구가 새겨진 안감을 알마가 직접 뜯어 제거되게 한다. 바바라 로즈 드레스에 이어 알마가 또 한번 그의 저주가 풀어짐에 행동을 취한다.
2. 관계
: 레이놀즈와 알마의 최초의 시작은 아티스트와 뮤즈의 관계였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알마를 첫 눈에 알아 본 레이놀즈는 그녀로 인해 창작 영감을 얻고 알마는 레이놀즈로 인해 콤플렉스로 여겼던 본인 몸매에 자신감을 얻고 레이놀즈 집에 머물며 생계를 유지해간다. 알마가 필요했던 레이놀즈는 이내 그녀의 소소한 습관(부산스럽고 시끄러운 식습관 등)이 거슬리기 시작하고 알마로 인해 얻었던 창작 영감마저 위협 받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이 권태는 일종의 기브앤테이크과 뚜렷해 보였던 둘의 관계를 더욱 금이 가게 만든다. 뮤즈로서의, 목적어로서 존재했던 알마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입증해 보이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독버섯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낸건 아닐꺼다. 알마는 바바라 로즈의 드레스를 직접 벗겨냄으로써 그의 상처에 관여하는데 도달한다. 이 후 둘 만의 오붓한 시간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껍집을 한 꺼풀 제거해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는 레이놀즈에게 그 어떤 수단으로서 역할도 하지 못한다. 거듭 관계 회복에 실패한 알마는 레이놀즈를 잠식시킬 수단으로서 자신을 이용하기로 한다. 독버섯은 거들뿐.. 나약해진 정신과 신체 앞에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의지하게 되고 이 괴상한 피학과 가학의 남녀 관계는 아티스트와 뮤즈의 클리셰를 벗고 알마를 목적어에서 주어 자리로 가져다 놓는데 성공한다. 둘의 관계는 목적과 수단을 넘어 더 숭고한 어떤 형태로 탈바꿈한다.
3. 팬텀
: 레이놀즈에게 유령은 엄마였고 웨딩드레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놀즈는 드레스를 만드는 의상 디자이너다. 그에게 엄마의 웨딩드레스은 창작을 위한 필요 조건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강박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인다. 진부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문장을 인용해야겠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레이놀즈의 의상실은 본인만의 성지와 같고 여태까지 그의 창작 활동이나 일상적인 루틴을 방해한 뮤즈 혹은 여자는 없었다. 그의 엄마만이 그의 곁에 붙잡혀 그의 딱딱한 세계를 더 견고히 하고 있었다. 스스로 주체가 되고 싶었던 알마는 기꺼이 그의 유령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약해진 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더 깊고 어두운 곳까지 그의 곁에 머물기로 한다. 알마는 레이놀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공이 아니라 휴식이라며 본인 곁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한다.
4. 종합: ’먼지와 유령과 시간에 빛바래지 않도록 드레스를 지킬 것‘. 알마는 레이놀즈와 드레스를 지키기 위해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해 있기로 택한다. 마지막 독버섯의 존재를 알고도 음미하며 음식을 먹은 레이놀즈는 이 이야기의 최대 수혜자이다. 고독과 외로움에 발버둥친 레이놀즈는 늘 누군가 필요했고 수단으로서 관계를 맺기를 희망했다. 그가 갑의 위치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를 평생에 괴롭혔던 엄마의 저주를 풀어낸 알마가 그 자리에 대신 위치했고 레이놀즈와의 관계에서 주체를, 우위를 점령했다. 다만 먼지와 유령과 시간에 빛바래지 않도록 알마는 드레스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 괴상한 러브스토리에도 내가 감동받은 이유인걸까. 앞으로 둘은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동화 같은 결말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레이놀즈를 사랑하면 인생의 모든 게 다 확실해진다는 알마의 말엔 어떤 영원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