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주 Jun 18. 2023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보고.

불안을 불안해하는 우리들에게.

 어쩐지 권태가 없었던 연애는 없었다. 권태가 권태로 존재하기도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는 마음으로 발현이 되기도 했다. 혹은 그 자리에 사랑이 아예 소진되었다는 착각에 관계를 종결한 적도 있었다. 행복한 만남 속에서도 늘 불안해했다. 내 마음이 변했고 그 또한 변했다. 그는 언제까지 나를 사랑할까? 혹은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1년이 지나도 아니 내일이 되도 지금처럼 유효할까?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연애를 하냐고 하겠지만 불안을 불안해하는, 권태를 두려워하는 이 질문은 관계를 맺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존재할 것이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마고의 불안도 마찬가지다. Take this waltz라는 원제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 또한 원초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의 사이에 있기를 무서워하는 그녀는 비행기를 경유할 때도 다리가 불편한 행세를 하고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안전하게 비행기를 환승한다. 신은 짧디 짧은 인간의 삶에 불안까지 주어 우리는 불안을 수용하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안을 이겨보려 별 짓을 다 한다. ‘새 것은 결국 헌 것이 돼. 인생에는 빈틈이 있고 미친 사람처럼 그걸 모두 메꿀 순 없어.’라는 대사가 영화에 등장한다. 하지만 비행기 경유마저도 매번 거짓 연기를 하는 마고는 필연적인 불안 속에서 괴로워하고 헌 것이 될 새 것에게 베팅하고자 한다.


 연인 관계에서 권태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한다라는 사실은 무려 과학적으로도 증명돼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헌 것의 편안함을 버리고 새 것의 설렘을 환대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어리석은 중생이라서 그런 것일까. 마고가 전 남편 루에게 이별통보를 하는 날, 루는 마고에게 말한다. ‘그냥 나중에 늙어서 내가 수십 년동안 매일 이 짓을 했다고 고백하려 했어. 그래서 당신 웃게 해주려고…‘라고. 5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전남편 루는 마고가 샤워하는 동안 찬물을 뿌리는 장난을 쳐왔다. 먼 훗날 그들만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애석하게도 그의 비밀스런 장난은 마고의 마음에 닿지 못했고 마고는 수십 년 후에 그의 장난에 미소짓는 것보다 지금의 불안을 잠식시켜 줄 대니얼의 왈츠에 몸을 맡기기로 택한다. 결국 마고는 5년 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남자, 대니얼을 찾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화면 중앙에 마고와 대니얼을 위치해두고 리드미컬하게 두 사람 관계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권태와 끝을 보여준다.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흘러나오고 놀이기구에 이제 마고만 남았다. 루의 아내로서 대니얼과 아슬아슬하게 놀이기구를 타던 과거의 모습보다 어쩐지 편안해 보인다. 대니얼과 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고 소름끼칠 정도로 이 전과 유사한 형태로 찾아온 권태도 그녀의 몫이기에 마고는 휠체어를 타는 거짓 연기를 하는 대신 불안을 수용해보기로 한다.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뻔한 명제를 마고가 이해하게 된 건 아닐꺼다. 다만 새 것도 헌 것이 된다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삶의 빈틈에 불안을 그대로 자리하게 둘 줄 알게 된 것이다.


 어쩐지 관계가 시작되면 그 과정엔 권태가 단연코 존재할 것이다. 우리도 사랑일까, 라는 물음에 답을 내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설렘이란 탈을 쓴 왈츠에 몸을 맡겨 손을 내미는 것도 각자의 몫일터이니. 다만 더 이상 불안에 불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팬텀 스레드>를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