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paperless office
메타버스와 페이퍼리스 오피스-1 에 이어서...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와 문서 체계를 아직도 최첨단 컴퓨터에 적용 중이다.
더구나, 우리는 고대의 유물이었던 두루마리 문서를 현대에 아직도 사용 중이다. 그것도 스마트폰에서...
메타포 (metaphor)
사전적 의미 :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
UX적 의미 : 사용이나 제어에 대한 개념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설계 기법
시스템화 된 우리 사회는 수많은 메타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낯선 개념을 쉽게 받아 들이도록 하는데 있어서 메타포 만큼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학습 시키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노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 왔다. 메타포는 과거의 익숙한 물건을 새로운 개념 설명에 끌어들여 대중들이 쉽게 상상하고 이해되도록 만들었다.
그 한 가운데 종이와 문서가 있다.
종이와 문서는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지식과 문화를 전달하는 상징성을 지켜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서 종이에 담겨있던 정보가 디지털화 되어 컴퓨터에 저장될 때, 전문가들은 컴퓨터를 잘 모르는 대중들의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무언가를 찾았고 그것이 종이와 문서의 메타포였다.
그리고 그 종이와 문서가 놓여있는 책상 위의 환경까지 통째로 컴퓨터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한가지 설명이 쉬웠다면 나머지 것들도 비슷한 방식을 취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File, Folder, Index, Label, Tag, Directory, Page Up/Page Down, Scroll, ...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흔히 발견되는 단어들이다. 모든 자료들이 파일이라는 개념으로 저장되고 디렉토리 구조의 위치에 놓인다. 데이터베이스에 인덱스를 저장하고, 작성한 글에 태그를 붙이고, 페이지를 스크롤 한다.
디지털 시대인 지금, 우리는 디지털 지식과 정보를 표현할 때 종이와 문서의 메타포를 사용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만큼 강력한 미디어인 종이, 종이 한 묶음의 문서, 문서를 만드는 책상이라는 문화적 유산의 도움을 받아야만 디지털 지식과 정보가 온전히 사람들의 머릿 속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키즈들은 이런 나의 생각에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어린 시절 학습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종이에 대한 경험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물리적인 자극과 반응을 통해 학습하고 배우며, 그 시기가 지나면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 키즈들도 어린 시절 색종이를 가지고 놀고,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을 거쳤고, 종이책을 넘기며 글을 읽어 주시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아무리 유튜브 시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전통적인 학습 과정은 생략되지 않았다.
컴퓨터는 다분히 형이상항적이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서 움직이는 디지털 신호를 빛으로 표현하고, 빛이 꺼지면 정보 또한 암흑 속으로 가려지는 그런 volatile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표현하기 힘들고 대표적인 표상을 정하기 힘들다. 넘실거리는 불빛을 잡아다가 머릿속에 정지된 이미지로 채워 넣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종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종이가 주는 특질과 상징적 개념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종이의 특질이 인류의 학습능력과 정보활동의 질적인 수준과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야 한다. 실제로 일부 디지털 기술들은 인류가 쌓아온 지식 다루는 기술을 퇴화 시키기도 한다.
세상이 바뀌면, 지식의 형태도, 학습하는 방식도 바뀌기 때문에 전통적인 지식 다루는 기술이 퇴화 되었다고 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에게 있어 식사하는 방법이나 토론하는 방법, 명령하거나 싸우는 방법이 2천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듯이, 외우고 상상하는 방법 또한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경험의 방법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이해하고 머릿속에 기억하고 상상하는 과정들은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더 나은 디지털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Paperless라는 긴 여정의 시작을 인류가 가진 최고의 지식 미디어인 종이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종이를 연구하면 좀 더 나은 학습효과를 가지는 정보 미디어를 발명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강력한 디지털 미디어라 하더라도, 인간 자체는 아날로그 미디어기 때문에, HCI는 결론적으로 아날로그 방식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