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분명히 과제를 제출한다고 들고 앞에 나가서 체온을 재고 그 옆에다 놓고 온 거 같은데, 내 레포트로 부채질한 일이 이렇게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레포트가 없다니. 과대가 두 번을 셌지만 없었다. 한 번은 나도 같이 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제출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는 말에 꿋꿋하게 분명히 제출했다고 우겨버렸지만 결국 레포트가 발견된 건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였다. 그것도 두꺼운 교과서 밑에 깔려서. 체온을 재고 나서 어떻게 했는지 곱씹어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전혀. 마치 그 순간이 비어버린 것처럼. 나는 어떻게 들고나가서 체온을 재고 도로 들고 와서 교과서 밑에다 깔아 둘 생각을 했을까. 짧은 판단으로 억지를 부렸다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5분 전 내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억울함에 휩싸였다. 아직도 모르겠는걸.
요새 자꾸 순간순간을 놓친다.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얘길 하고 있었는지 방금 들은 말과 대답한 내 말이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뭐라고 했을지 애써 생각하기보다는 침묵과 추임새를 선택해 다시 맥락을 찾아들어간다. 좋아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정리하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잠이 부족한가, 나이를 먹었나 하고 생각해봐도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겪으면서 약간의 불안감과 조바심을 느낀다. 삶을 늘 인지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도 등교시간이나 레포트 같이 중요한 것도 놓치게 되니까 말이다. 원래 좀 덤벙대는 성격이라 중요한 것을 메모하고 체크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안 하던 계획표를 짜려니 어색은 한데 슬슬 익숙해지니 참 든든하다. 문제는 순간이다.
계획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중요한 이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걸 놓치는 것일까.
방울토마토에 진딧물이, 상추에 굴파리가 발견되었다. 진딧물은 손으로 잡아주는데 굴파리가 어째야 할지 고민 중이다. 텃밭은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 끊임없이 도전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