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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리스 May 12. 2020

#6 알 수 없는 일

순간을 놓치는 이유?

  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분명히 과제를 제출한다고 들고 앞에 나가서 체온을 재고 그 옆에다 놓고 온 거 같은데, 내 레포트로 부채질한 일이 이렇게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레포트가 없다니. 과대가 두 번을 셌지만 없었다. 한 번은 나도 같이 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제출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는 말에 꿋꿋하게 분명히 제출했다고 우겨버렸지만 결국 레포트가 발견된 건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였다. 그것도 두꺼운 교과서 밑에 깔려서. 체온을 재고 나서 어떻게 했는지 곱씹어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전혀. 마치 그 순간이 비어버린 것처럼. 나는 어떻게 들고나가서 체온을 재고 도로 들고 와서 교과서 밑에다 깔아 둘 생각을 했을까. 짧은 판단으로 억지를 부렸다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5분 전 내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억울함에 휩싸였다. 아직도 모르겠는걸.


  요새 자꾸 순간순간을 놓친다.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얘길 하고 있었는지 방금 들은 말과 대답한 내 말이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뭐라고 했을지 애써 생각하기보다는 침묵과 추임새를 선택해 다시 맥락을 찾아들어간다. 좋아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정리하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잠이 부족한가, 나이를 먹었나 하고 생각해봐도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겪으면서 약간의 불안감과 조바심을 느낀다. 삶을 늘 인지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도 등교시간이나 레포트 같이 중요한 것도 놓치게 되니까 말이다. 원래 좀 덤벙대는 성격이라 중요한 것을 메모하고 체크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안 하던 계획표를 짜려니 어색은 한데 슬슬 익숙해지니 참 든든하다. 문제는 순간이다.


  계획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중요한 이 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걸 놓치는 것일까.


방울토마토에 진딧물이, 상추에 굴파리가 발견되었다. 진딧물은 손으로 잡아주는데 굴파리가 어째야 할지 고민 중이다. 텃밭은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 끊임없이 도전을 하게 만든다.

사진빨이 훌륭한 방울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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