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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만은방랑자 May 13. 2017

힐링의 니스

프랑스 니스_멈추고 비우고 오기

 니스는 온전히 애인의 선택이었다. 물론 나도 가보고 싶었지만, 다른 도시를 제쳐두고 선택할만한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항을 나와 니스의 하늘을 보는 순간 니스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과 파리, 바르셀로나를 지나오면서 어느 정도 여로가 쌓인 상태였는데, 니스는 힐링을 하기에 적합한 도시였다.


여행 중에도 힐링이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여행지, 마음먹고 간 여행지라면 멈추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싶고,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법이다. 그러다 보면 여행은 본래의 목적(물론 사람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인 힐링과는 멀어지게 되기도 한다.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곳에 처음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니스 같은 여행지가 필요하다. 해변에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 힐링의 장소이다.

니스 해변은 자갈밭이다. 누워있기에 절대 편한 곳은 아니다. 두꺼운 스펀지 판때기를 가져가야 그나마 누워있을 법한 곳이다. 유럽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얇은 타월 한 장을 깔고 누워있었다. 등이 베기지도 않나 보다. 니스 해변에서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슴을 개방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탠을 할 때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을 활짝 열고 앉아있기도 하다. 마음 편히 사람 구경하기 어려웠다.

바다 색깔이 해변 근처는 맑은 에메랄드 색이었고, 깊은 곳은 파란색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파도치는 해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니 당장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졌다. 한동안 물장난도 치고 애인과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피로를 파도로 흘려보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느렸고, 멈추어있었다. 항구에서 큰 여객선이 연기를 뿜으며 느릿느릿 바다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러기 소리와 멈춰있는 듯 보이는 넓은 바다가 규칙적으로 보내는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우릴 미소 짓게 했다. 눈 앞의 파란색 캔버스처럼 우리 마음도 깨끗하게 비워졌다.

한동안 해변에 머물러 있다가 앙리 마티스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어느 도시를 가든 미술관은 우리에게 필수 코스이다. 애인과 나는 그림에 관심이 많다. 멀리서 본 마티스 박물관은 너무나도 예뻤다. 파란 하늘 아래 색이 바랜 붉은색 건물. 옅은 황금색으로 창문 주변을 칠한 동화같이 아담한 건물이었다. 마티스의 작품을 처음 접해봤는데, 야수파(포비즘)를 주도했다고 하고, 피카소와 함께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마티스의 화려한 색감은 니스와 어울렸다.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란색과 흰색 원료를 사용한 건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건물 자체에서 니스 해변이 떠올랐다. 우리는 계획 없이 샵을 구경하고 카페에 가고 사람 구경을 했다. 계획이 없으니 온종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블로그에서 찾은 맛집을 갔지만 서비스와 맛에 실망했다. 뭐 메뉴를 잘못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맛도 평범한 데다가 종업원의 불친절함에 맛이 배로 맛이 없어졌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그냥 길을 걷다 발견한 곳이었다. 가게 이름은 Voyageur Nissart. 아파트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맛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 약간 허름해 보이면서도 신경 쓴듯한 모습이었다. 내부에 사람이 꽤 있었고, 무엇보다도 입구에 트립 어드바이저와 다른 사이트로부터 매년 맛집으로 선정됐음을 보여주는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었다. 자리를 잡았는데 역시 종업원부터 너무 친절했다.

프랑스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관광객들이 아니었다. 혹여 관광객이어도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음식이 기대됐다.


우리는 문어 샐러드와 연어 샐러드를 애피타이저로 소고기와 생선 요리를 하나씩 시켰다. 라따뚜이와 치즈 요리를 시켰는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은 디저트로 마무리.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신기하게도 문어 샐러드와 라따뚜이였다. 다른 메뉴도 정말 손색없었고 깔끔한 맛이었다. '음~'을 남발하면서 눈을 확 뜨게 하는 맛을 음미했다. 라따뚜이는 어딜 가도 이만큼 맛있진 않으리라 생각할 정도였다.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식기가 그릇 위로 움직이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가 어우러져 시끄럽지 않고 적당한 소음을 만들며 식욕을 더욱 돋게 했다. 시간과 스케줄에 쫓기지 않고 한자리에 느긋하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다른 곳에서는 내가 뭘 봤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곤 했지만, 니스에선 그저 해변과 마티스 박물관, 시내만 보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도 천천히,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면서.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걷는 니스의 밤거리는 아름다웠다. 노란 가로등불의 아름다운 거리였다. 광장의 분수는 밤거리에 시원함을 더해주었다. 네온 간판은 한 개도 없었다.(적어도 우리가 다닌 곳에는)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이들의 기분 좋은 시끌벅적함으로 거리가 메워졌다. 해변에서는 야자수 바로 옆에 등불을 세워두어 빛나는 야자수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노랗게 빛나는 도시와 대비되는 밤의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애인과 와인을 마셨다. 그날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손을 맞잡은 우리 앞엔 먹색 바다에서 보내주는 규칙적인 파도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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