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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Apr 13. 2022

권태에 빠지는 이유

장수커플들의 오만한 착각


세상을 잘, 그러니까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주옥같은 격언들이 참 많다. 그 분야가 '연애'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하다. 온갖 개인의 경험들이 빚어낸 충고들이 이곳저곳 화수분처럼 끊이질 않는다. 이게 다 무탈히 오랫동안 연애를(혹은 부부생활을) 하길 바라는 인생 선배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정수일 터이다. 연인을 위해서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또는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수많은 경고와 간섭들. 그러나 설령 천상으로 가는 방도를 찾았다고 한들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는 어떤 값을 입력한다고 명확한 결과 값이 도출되는 프로그램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연애란 뭘까?


자신의 연애가 실패로 수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연애 소설이 행복하게 끝맺이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정작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성적이 잘 나오길 기대하는 학생이 교과서 한 번 정독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현상은 연애가 오랜 기간 무탈할수록 두드러진다. 혹시라도 당신이 연인과 함께한 기간이 안정권을 돌파했다면 한 번쯤 그 의의에 대해서 반추해보는 게 좋다. 어떤 연애가 성공적인지, 지금 나의 연애가 그 범주에 해당되는지.


오래 사귀면 성공한 것인가?


물론 표면적으로는 '헤어지지 않는 연애'가 성공적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막상 연애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꼭 앞선 정의가 참인 명제도 아닌 것 같다. 예컨대 영화 「연애의 온도(2013)」에서는 권태가 온 커플이 이런 독백을 한다.


"우리의 연애는 달콤하지도 아름답지도

이벤트로 가득 차 있지도 않았어요

지루하고 평범하고 아무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보통의 연애였죠"


출처 : Cleo's handmade tale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극 중 주인공들의 연애 기간은 2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름 볼장 다 본 커플로 묘사되어 있다. 초기에 불같이 사랑하던 연인은 어느새 서로의 경계를 넘지 못한 채 숨을 쉬고 있어도 물속에 가라앉은 기분으로 답답한 관계를 이어간다. 각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놓고 간극을 좁히려는 패러독스에 빠진 것이다.


이렇듯 무작정 수명을 연장시킨 연애가 반드시 성공적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뻔한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떤 오만한 착각에 빠진다. 이 정도의 안주 속에서도 지금의 관계가 충분히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이할 것이란 착각에 말이다.


권태는 언제나 불시에 엄습한다. 평소 상대방의 장점이라 여기던 것들은 매일 뜨는 태양처럼 당연한 것이 된다. 반면 호수 위의 부유물처럼 떠오른 단점은 유난히 악취가 난다. 그러니 갖추던 예의는 버리고 편안함을 빙자하여 참지 않고 지적한다. 화를 내고 싸운다. 상황이 반복된다. 어느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온데간데 자취를 감춘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전락한다.


원래 신경질도 친구보다 엄마한테 자주 내는 법이지 않은가? 이유는 곁에서 떠나지 않을 사람이란  아는 간사함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익숙한 관계에 오만함이 스며드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막지 못한다.  


아무리 편안 사이라도 존중을 위한 여백을 남기자


해리포터의 펜시브처럼 기억을 꺼내서 연애 초기를 떠올려보자. 분명 봄날 벚꽃 같은 설렘과 떨림이 가득하면서도 적당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권태란 다른 말로 게으름이다. 더 이상 상대로부터 아쉬울 게 없으니 조급함이 사라져서 찾아오는 지배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별이 때로는 권태를 부수고 깨달음을 준다. 순식간에 익숙함이 상실감으로 변색되는 걸 마음이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오래된 연인은 친구처럼 편해야 된다고. 맞다. 하지만  보다도 못한 취급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차피 편안함이란 내가 수동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굳이 찾아서 환기시켜야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존중은 의도치 않으면 나올  없는 비자발적 행위이며 오히려 약간의 불안함을 감수하는 것이 서로의 가슴을 진동시키고 생명력을 키운다. 그럴수록 관계는 권태에서 벗어나 작은 곰자리의 별처럼 발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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