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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Nov 13. 2019

장거리 연애는 마음을 멀어지게 만드는 걸까



“잠깐만, 나 기차 예매 좀 하고”

“이야 너 대단하다. 안 피곤하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 동구가 내 연애사를 듣더니 한 첫마디였다.

매주 고속철도를 타고 충청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일을 염두한 염려였다. 생각해보면 비단 동구뿐만 아니라 내 장거리 사정을 듣는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 거들곤 했다. 내 안위를 걱정해주고, 통장잔고도 신경 써주고 때론 선을 넘어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냐며 우리 둘 관계의 신뢰도를 의심했다.


“괜찮아. 나름 할만해”

“아니, 그래도 평일에 일하면 주말에 좀 쉬기도 해야지”

이런 상황이 불편한 나는 적당한 말로 대꾸하고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주로 실패한다.


집에서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도착할 때까지의 총시간은 편도로 3시간이 좀 넘지만 실제로 나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왜지? 어려서부터 기차 타는 것을 좋아서인가? 고유의 트랙 위에서만 달릴 수 있는 기차는 자동차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풀과 나무들을 지나 터널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튀어나오는데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면 평소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착하는 성향 탓일까. 바쁜 생활 속에서 놓친 귀중한 음악에 몰두하고, 읽고 싶었던 책들과 흥미로운 기사를 읽고, 제2 외국어 공부를 하는 등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나에게 있어 최적의 장소가 바로 기차인 것이다. 경상도를 오고 가는 기차 안에 착석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서재로 간주한다. 그러다 가끔은 도착 안내 방송을 듣고 금세 서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아쉬워 한적도 있었다.


“완전 최수종이네. 니 여자 친구는 안 올라와?”

동구가 이런 나를 두고 배우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유명한 배우를 언급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배려있는 타입도 전혀 아니고. 가끔 여기서도 만나. 근데 여기 오면 내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숙소를 잡아야 되는데  걔는 집이 있거든. 내가 가는 편이 훨씬 낫지”

내가 극구 부인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떻게 매주 내려가냐. 어쨌든 난 못한다. 서로 힘들겠네.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

나는 친구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예약을 서둘렀다.

동구가 말한 것과는 달리 나는 마음씨가 따뜻한 배려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누군가 나를 두고 당신은 논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이다라고 묘사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장거리 연애는 분명 연인들 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데 이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도 얼마나 위험성이 큰지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였던가.

어느 날 연애 중반 즈음, 그녀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떡하지? 이제 자주 못 보겠네”

그녀가 다소 서운함을 담은 어조로 말했다.

“주말마다 보면 되지 뭐. 서로 약속은 최대한 겹치는 날짜로 잡아서 징검다리로 안 보도록. 그럼 주에 한 번은 보는 꼴이니까 될 거야. 휴가도 쓰고”

난 불안했지만 전혀 별일 아니라는 듯 쿨한 척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날 집에 가는 길엔 혼자 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주 조우하던 익숙한 검은 고양이가 바로 옆으로 지나갔지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나름의 계획을 짜야했다. 분명 유비무환이라 했다. 과거에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자마자 몇 주 되지 않아 시들시들 해지더니 결국 서로의 행동거지만 지적하다 이별이라는 파국을 맞고 말았으니 말이다. 경험 상 다 잘될 거야라는 지극히 유토피아스럽고 안주형 마인드는 절대로 위험하다.

난 뜬금없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더니 남녀관계에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장거리 연애가 무조건 힘들다는 고정관념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집에 있던 네 살 많은 형이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난 이 연애의 불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재적으로 접근해야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이미 벌어진 일이니 현 상황에 대해 누구의 탓도 하지 말자. 불평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이건 과거의 나에게선 찾을 수 없는 꽤나 성숙한 판단이었다.


예전엔 항상 짜증이 많고 만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내가 변화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건이라기보다는 작은 깨우침을 준 구절이었다. 정확히 출처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용은 대강 이랬다.

‘내가 지금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굳이 성을 낼 필요가 없다’

짤막한 이 구절을 읽은 내 마음속의 팽이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짜증을 낼까? 외투를 벗으며 곰곰이 과거를 훑으며 사색에 잠겼다. 엄마가 내 모습을 봤다면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광적으로 싫어하는 게 하나 있었다. 교통체증이 심해 도로 위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상황. 다소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이 시간의 알맹이를 줍지 못하는 것을 혐오한다. 분명 이 외부적 요인은 내가 통제할 재간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바뀌는 게 없다.


‘어쩌면 연애도 똑같을지도 몰라’

궁극적으로 장거리 연애가 관계를 소원해지게 만들기보다는 외로움과 불안한 마음이 상황을 악화시킬 확률이 높다. 찾아가는 즐거움보다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다면 그 관계는 분명 언제 종료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혼자만의 사색에서 탈출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2019 All copyrights is reserved by Luke


장거리 연애를 한 지 6개월이 넘은 어느 날은 그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고 돌아가는 날 역까지 배웅해줬다. 기차역은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역설의 장소다.

“출장 때문에 다다음주에나 보겠네”

“그러게”

우리 역시 이별의 아쉬움에 파묻혀 말 수가 적어진 상태였다.

“괜찮아. 영상 통화하고  바쁘게 지나면 시간 금방 지나가. 기차 왔네”

열차의 자동문이 개방되고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나는 습관처럼 짧게 입술을 맞추었다. 몸에 온기가 퍼지고 이번엔 다시 만날 설렘에 파묻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알아차렸다.


거리는 마음을 멀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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