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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Nov 11. 2019

낯선 필름 속에 담는 내 속마음



태양이 높이 뜨고 파란 하늘이 우주를 감싼 어느 11월이었다.


정례적인 데이트 코스에 절어있을 무렵 모처럼 그녀와 군산으로 떠났다. 사실 나는 지리적으로 군산이 충청남도에 위치할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거주하는 충북에서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 탓일까 나의 무지함 탓일까.

 

이 아이와 사귀고 나서 참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그녀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어쩌면 상대방이 좋아하기 때문에 매달 의무적인 여행 계획에 더 박차를 가하는 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아무렴 뭐 어떤가. 요번 여행은 좀 더 추억스럽게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회용 필름 카메라 2개를 구입했다. 현재의 기억에 옛날의 감성을 담아 살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는 컬러, 다른 하나는 흑백으로 샀다. 자칫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는 국내여행에 신박한 장치 하나로 우리는 꽤나 들떠있었다.


2019 All copyrights is reserved by Luke Kim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 기기에 물들어있는 우리에게 꽤나 낯선 기계가 되어버렸다. 필름 카메라 하면 항상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중학교 때 동네 슈퍼에서 녹색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학교에 가지고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찍으려 노력한 흔적들이 드러난다. 체육이 끝나자마자 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미리 갈아 신는 친구. 플래시에 놀라 콧 평수가 확장된 짝꿍까지. 나는 복도에서 아는 친구들을 마주칠 때마다 불쑥불쑥 카메라를 꺼내었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당혹감이 동시에 섞인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자기도 모르게 저마다 포즈를 취한 동창들이 모습이 아직도 감광지안에 살아 숨 쉰다. 이게 아날로그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단 한 번의 조준과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한 자리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내고 잘 나온 사진 두어 장을 건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첫 필름 컷을 채운 장소는 뜬금없게도 여행의 첫끼를 해결한 유명 게장집 앞이었다. 군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점심을 먹으러 간 가게는 유명세만큼이나 사람도 많고 가격도 높았다. 탈-칵하는 투박한 플라스틱 셔터 소리와 함께 우리는 찍힌 게 맞냐고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그렇게 일회용 카메라에 첫 이야기를 담은 우리는 곧장 다음 행선지인 선유도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을 가진 고군산대교를 건너고 있자니 불현듯 샌프란시스코가 떠올랐다. 필시 웅장함을 뿜어내는 거대한 금문교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나는 모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적이 있으며 내가 운을 띄우자 그녀도 자신의 방문기를 쏟아냈다.


연애는 이런 게 아닐까.


서로 다른 존재가 교집합을 차츰 늘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둘만의 행복을 느낀다. 만약 이 이해과정 속에서 문제가 생기고 삐그덕 거리면 관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이 좋아해 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먼저 다가가 주는 것이 좋은 관계의 초석을 다지는 지름길이다. 나는 이 행동이 단순히 순종적이라든지 관계적 우위를 빼앗겼다는 게 아니라 성숙한 배려라고 말하고 싶다.


선유도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다 되어 해는 귀가 준비를 하고 날씨가 추워졌다. 장시간 운전으로 지친 몸이 금단현상처럼 카페인을 갈구했다.

나는 근처 카페에 잠시 들리자고 제안했다. 신발코가 자연스레 프랜차이즈 커피숍 쪽으로 향하자 그녀는 그 옆에 위치한 개인 카페를 언급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꽤나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한 매장이었다. 우리는 결국 그 카페의 문을 여는 쪽을 선택했다.

2019 All copyrights is reserved by Luke Kim

그녀는 언제나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안주하는 것보다는 모험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반대로 익숙한 것을 택하는 안전추구형이었으므로 우리는 가끔가다 선택의 기로에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족히 20년 이상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나와 무조건 같은 취향이길 바란다면 그놈은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그 바람은 분명 이기심이고 환상 속에서 피어난 욕심일 거라 확신한다.


크레마가 짙게 낀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우리와 비슷한 수명의 관광객들이 횡단보도를 넘나들고, 사진을 찍고, 차들이 경적을 울려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닭꼬치를 베어 먹었다. 나는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찰나를,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사무실보다 훨씬 평화로운 풍경이라 녹여내며 행복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주말의 일상에서 드는 삶에 대한 독특한 이질감. 현실에서 벗어난 4차원적 공간감에 마음껏 휩싸여 있었다.

내가 상념의 길에서 무념의 길에 다다를 무렵, 다시 한번 필름 카메라 내부에서 퉁기는 스프링 소리 덕분에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이따금 행복은 현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마약의 대체역할을 한다. 곧, 내가 멍을 때린다는 것은 어쩌면 여유로운 상념이 젖을 수 있을 만큼 행복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새 해가 가라앉는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 잠시 한눈을 팔다 수평선을 바라보면 붉은 덩어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각도도 함께 내려앉았다. 우리는 수면을 아름답게 수놓는 노을 앞에서 휴대폰과 카메라를 번갈아가며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가 눌러대는 셔터가 무대의 막을 내리는 버튼처럼 점차 하늘에 어둠을 드리웠다. 내 손에 쥔 흑백 카메라도 옛 시절 친구들의 표정 같은 자연스러움을 남기고 싶어 포츠를 취하지 않은 날 것을 찍으려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터트려댔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태양이 감춰진 서쪽 수평선을 바라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약 2년 반의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변해있었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울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사랑일까.


그 아이가 나를 부른다.


나는 또다시 깨어난다.


답이야 어찌 됐든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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