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입사 동기이자, 사내부부다. 나에게는 3년 사귄 구남친이 있었고 남편은 워낙 과묵했기 때문에 데면데면하며 지냈다. 구남친과 결별 후 오랜만의 솔로 생활에 적응이 안돼서 몇 번 밥 먹자고 가까이에서 자취를 하던 남편을 불러냈다. 남편은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밥만 먹고 갔다. 게임해야 된다고. 그래서 나는 이 오빠와는 무슨 일이 생길 일이 전혀 없겠구나 싶었다.
그 당시 자주 어울렸던 A 과장님이 친한 동기가 있으면 같이 저녁을 사주겠다 하셨다. 원래는 B 언니를 불러낼 예정이었으나, B 언니의 급작스런 야근으로 남편이 긴급 투입되었다. 돼지껍데기에 각 1.5병씩 소주를 마시고 A 과장님과 남편이 자취방 근처 지하철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지하철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되는 주택가 골목에 있었는데, 외간 남자들에게 집을 알려주는 것이 왠지 조신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는 것을 굳이 사양하며 두 남자를 돌려보냈다.
(아, 물론 돼지껍데기에 소주 1.5병도 조신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데 술도 꽤 취했고, 골목길을 혼자서 가려니 막상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께 전화할 수는 없고, 만만한게 동기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가겠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왔고 그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연애감정이 전혀 없었어서 '크하하하. 오빠, 왜 우리가 손을 잡고 있죠?' 하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왔는데,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잉?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밤을 꼬박 새우고 씻기만 하고 다시 나온 거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한 일주일 정도 아침마다 나를 데리러 왔다. 입사 1년도 안 된 사회초년생이 차가 있을 리도 없고 그냥 같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우리의 썸은 시작되었고, 남편은 며칠 후에 나한테 사귀자고 말했다. 그것도 사내 메신저로.
그 날 저녁에 만나기로 이미 약속을 한 상태에서 어쩌면 오늘이 고백 타이밍이겠거니 짐작했지만, 사내 메신저로 저런 메시지를 받게 될 줄이야. 나는 당황해서 메신저를 꺼버렸다. 그 날이 우리의 1일, 벌써 7년 전 일이다. 그리고 사내 메신저로 고백한 일은 남편의 평생 흑역사가 되었다.
결혼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시 남편이 스물여덟, 내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꽤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정하게 된 것에는 사내연애였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큰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완전히 피해 연애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사와 정 반대방향의 영화관에 가도, 다른 도시의 관광지에 가도 회사 사람이 있었다.
회사의 누군가가 '너네 사귀지?' 하기 전에 결혼 발표를 했다. 동기들은 열애가 아닌 결혼 발표를 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에서야 얘기지만, 당시 우리가 모두 속도위반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동기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던 날, 쏘맥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내 모습에 다들 '아닌가 봐' 했다고.
지금까지는 사내부부로 사는 것에 꽤 만족한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 가장 든든한 아군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 퇴근 후에 'C 부장 알지? 그 사람이 오늘 뭐랬는지 알아?' 하며 하소연 할 때도 C 부장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승진시험을 위해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주말에사무실에 나와 남편이 나에게 데이터 산출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도 있었다.
대게 사내부부는 평판이 비슷하다. 둘다 이상하거나 둘다 정상이거나. 서로 행동을 조심할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한다. 일종의 내부통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