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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란 Nov 08. 2020

워킹맘의 직장어린이집 예찬

회장님, 감사합니다.

직장어린이집 4년차, 내년이면 5년차가 된다. 둘째를 낳으라는 말에는 손사래를 치지만, 무난하게 워킹맘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직장어린이집 덕분이다. 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98일만에 복직, 11개월까지는 친정에서 아이를 키워주셨다. 11개월부터 15개월까지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에 다니다 직장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신입원아 선발인원은 10명. 1순위는 한부모가정, 2순위가 여사원, 3순위가 남사원 자녀였다. 사내부부는 2순위, 3순위에 동시에 해당되기 때문에 선발가능성이 높았고, 남사원 자녀들 중 몇명은 추첨을 통해 최종 선발되었다고 들었다. 먼저 아이를 보낸 선배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고민글이 올라오면 '아묻따' 직장어린이집이라는 댓글을 많이 달려서 우리 회사에 직장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워킹맘은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B선배는 일요일 오후 2시 이후로는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에 야외활동을 좀 무리하게 하면 금방 코를 훌쩍이는 아이 때문에, 월요일에 급작스러운 휴가를 내는 일이 너무 잦아 아예 자제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촘촘한 스케줄로 일주일을 살아내는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거의 모든 워킹맘이 경험했을, 울컥하는 순간은, 원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내 아이를 보았을때다. 회의가 길게 이어지거나, 보고서에 급한 수정사항이 생겼을 때, 분위기상 꼭 참석해야 할 것 같은 번개 회식(예컨대, 조직개편이나 인사이동을 앞둔) 등등 예상치 못한 일은 항상 일어난다. 장담컨대, 육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것이었다.


회사에서 어린이집까지 뛰어가는 그 몇 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손발 안맞는 남편, 굳이 퇴근시간 지나서야 채근하는 상사,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 붐비는 횡단보도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앞사람...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3살 밖에 안된 아이를 10시간 넘게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있는 건지.


그렇게 숨을 컥컥 거리며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는데, 깜깜한 복도를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8시 전인데 이렇게 불을 꺼놓나' 하며 원망의 화살이 선생님에게로 향하려던 찰나 통합보육실 안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남은 아이가 심심하거나 울적해지지 않도록 선생님께서 재미나게 놀아주고 계셨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보고도 아쉬운 듯 따라나섰다. 그 때의 안도감이란.


직장어린이집은 정부지원금과 학부모 분담금 외 추가로 회사지원금이 있기 때문에 보다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다. 넉넉한 예산은 보육의 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선생님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이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나은 편이어서 좋은 선생님들이 많고, 근속연수도 길다. 한 반에 정원 10명~13명에, 담임교사는 3명.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하고, 야간돌봄교사 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되기 전에 이미 2부제로 운영해왔다. 학부모 운영위원장도 맡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직장어린이집이 좋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옛날 할머니 말로, '소도 일을 시키려면 먹여야 된다고'.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


남편의 이직으로 같은 직장어린이집을 보내다 사립유치원으로 전학간 한 친구는 매월 110만원 정도 되는 원비 중, 60만원까지만 카드결제가 가능하고 나머지 50만원은 봉투에 담아 현금으로 준비해야 한단다. 그리고 원장, 부원장, 총무이사가 모두 가족이라고. 중간에 원을 옮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초, 우연히 원서를 넣었던 병설유치원에 덜컥 합격(당첨)이 되었었다. 돌봄시간은 오후 8시까지로 어린이집과 같지만, 6시만 되도 남은 친구들이 한 두명 뿐이고 그마저도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부모를 기다린다는 얘기에 마음을 접었다. 코로나로 그 때 유치원으로 옮겼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이의 어떤 기회를 빼앗은 것이 아닌가 라는 무거운 마음이 든다.


"완벽한 부모는 없어. 그냥 너는 이런 엄마일 뿐이야." 친구들의 시크한 말이 때론 완벽한 위로가 된다.


PS. 모든 회사는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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