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유치원 선생님의 생각
공립유치원 교사이자 아들 엄마로서 영어유치원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편에 이어 이야기 해보자면,
3. 남다른 소수 아이들의 모습에 애먼 아이들이 피곤해진다.
영어 유치원 자체가 학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발달에 적합하지 않고 놀 권리를 앗아가는 곳이라 해도
불리한 모든 환경을 뚫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고 빛을 내는 아이가 있다.
영어를 좋아하고 잘해서 듣고 말하는 것이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수업을 이끌고 주도성을 찾는 아이.
부모가 원하는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는 그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영어 학원에서 몇 프로나 될까?
새벽달 '엄마표 영어 20년 보고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또한 영어학원을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렇게 기량을 발휘하는 아이는 10%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럼 나머지 90%아이들은?
영어로 말하는 아이들이 칭찬받는 곳에서 선생님한테 신나게 조잘거리고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아이들이기에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럴 거라고 예상은 된다만)
하고싶은 말을 참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속상하다)
몸을 베베꼬는 아이도 있을거고 부모한테 실망을 주는 아이도 있겠지
자신의 아이가 10%일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가 놀면서 창의성을 기르고 인격을 형성해 나가야 할 그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4. 놀이 시간이 현저히 부족하다.
1편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유성, 주도성을 키워나간다.
누리과정에서 주창하는 게 '놀이를 통한 배움'이다
하지만 영유에서는 이 '놀이'시간이 거의 없다.
심지어 유치원에서는 바깥놀이 시간이 1시간 이상 필수다.
그만큼 아이들은 놀아야 할 권리가 있고 영유아기의 시기 특성상 실컷 뛰어 놀아야만 폭발적인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유도 좋아만 하는데 무슨 소리세요?"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10%의 아이들은 논외로 하겠다 (물론 그 아이들의 놀 권리가 여전히 신경쓰이긴 하지만)
연예인 아이들도 많이 다닌다는 압구정 영유에 근무했던 내 지인에게 물어봤다.
놀이 시간이 있느냐고
"점심먹고 30분 정도 노나..?"
"원어민 선생님들이 하는 체육, 미술, 과학수업이 있는데 그거로 애들은 재밌어하는 거 같아.."
첫째, 놀이의 절대적인 시간 부족
둘째, 선생님이 주도하는 수업
선생님이 주도하는 건 수업이지 놀이가 아니다.
나도 체육, 미술, 과학 다 한다. 심지어 같이 주제를 정하고 재료를 함께 탐색해서 고르고 장소도 바꿔가며 굉장히 융통성있게.
근데도 아이들은 수업과 놀이를 굉~장히 별개로 생각한다는 것.
교사가 메인인 수업은 즐거울 수 있을지언정 아이들이 온전한 주도성을 경험하기 어렵고 개개인의 창의성을 이끌기 또한 어렵다.
그리고 그 수업을 가르치는 원어민선생님이 과연 모두 유아 전공자일까?
유아 발달에 기반한 교육을 이수한 선생님이 가르치는 미술, 체육, 과학 수업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영어' 외에 어떤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5. 레벨테스트
영유에 가면 제일 처음 하는 게 레벨테스트이다
실력을 가늠해서 어느 반에 들어가야할지 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비내린 시험지를 받을수도 있고 실망하는 부모의 표정을 봐야할 수도 있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그 순간의 분위기를 읽는다
이 시기 아이들은 내가 최고인 시기다
내 엄마 아빠가 제일 힘 세고, 남극 북극 안 가본데가 없고, 집은 운동장 만한 시기다
"우리 집은 이마트보다 더 크거든?"
"선생님 저 저번주에 북극 갔다왔어요 북극!"
이렇게 과장섞인 귀여운 거짓말들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게 최고이고 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아이들이 레벨테스트를 하면 자기보다 앞서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 내가 틀렸다는 것, 내가 영어를 못해서 낮은 반에 갔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아이들이 발달특성상 자연스럽게 갖는 자신감에 금이 가는 것이다
발달에는 누적성이 있어 이때받은 데미지는 이 시기에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태도가 되고 계속되는 삶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이후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하는데 문제가 된다
4. 영유에 다니던 아이들의 공통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유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유아기에 길러야 할 자조기능, 기본생활습관 영역이 조금 부족했다.
'거기에 적응을 못해서 돌아온 아이들이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전학은 흔한 일이다.
다른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오는 경우도 꽤 많다. 이사오는 경우도 많고 부모와 유치원의 가치관이 달라 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전학을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한다.
영유 적응을 못해서 온 아이나 다른 유치원 적응 못해서 온 아이나 다를 게 없단 이야기다.
근데 유독 영유에서 온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그랬다.
만4세면 (6살) 자기 신발은 어설프더라도 스스로 신을 줄 알고, 자기 이름을 찾아서 가방을 놓고, 물통을 꺼내고 하루 일과를 "스스로" 시작해야하는데
항상 누군가 해줬다는 듯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영유에서 온 아이들만 4번 맡아봤는데 이상하게 공통적으로 그러했다
우리 반 뿐 아니라 다른 반에 온 아이들도 종종 그랬다
물론 내가 접했던 아이들 외에 다른 아이들은 자조기능도 기본생활습관도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꼬집고 싶은 부분은
영유는 영어학원이기 때문에 영어가 무조건 1순위라
"유치원의 하루 일과를 능동적으로 수행하는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연령과 발달에 따라 늘어나고 있는가?"
에 대해서는 조금 무관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화는
6살 아이가 전학와서는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멍-하게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부모님과 상담해보니 항상 무엇을 할지 정해주고 학원의 로테이션대로 돌아서 그런지
무엇을 할지 알려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무슨 놀이를 해야할지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것과
'놀이를 스스로 선택한다'의 개념이 없어 멍하게 있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선택해본 경험이 없다니 세상에)
유아기는 에릭슨 발달단계 상 주도성과 죄의식 시기이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지원받는 환경에서 목표를 달성한다면 주도성을 획득하지만
스스로 하려는 행동을 제지받고 지나치게 통제받으면 죄의식을 얻게되는 것이다
스스로 영어를 정말로 즐겨서 잘하려고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있다면 그 속에는 결국 칭찬받고싶은 마음이 목표인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주도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학원공부가 아니라 놀이다
영어유치원은 학원이기때문에
부모님들이 투자한 학원비에 비례하는 영어실력을 증명해내야 한다
학부모들이 내는 금액을 생각하면 학원의 스케쥴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안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영어'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이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학부모 상담 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 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