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가에게 건전지 장난감은 더이상 주지 않으련다
자극에 적응하는 아기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임용을 거쳐 공립유치원 교사신분인 나는
대학교에서 보육관련 과정을 모두 이수해 보육교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남들보다는 내가 육아에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웬걸?
영아와 육아는 천지차이라 내 아들과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온 그 순간부터 멘붕이었다
신생아 시절엔 당장 하루하루가 나의 생존이었기 때문에 육아에 대해 알아볼 여력도 없었고
임신 시절엔 돌아오지 않을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느라 육아 관련 공부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거, 다들 한다는 소위 '국민템'들 위주로 육아용품을 채워갔다
장난감도 마찬가지였다
신생아 시절에는 타이니모빌이 제일 유명하다길래 냉큼 당근해오고
친구들이 사주는 건전지 장난감 선물들도 냉큼냉큼 고맙다고 받았다
타이니모빌은 한 번 보여주면 20분 운 좋으면 30분정도 찡얼거리지 않고 그자리에 있었다
(어찌나 감사했는지!)
그러다보니 혼자 밥 먹을 때, 집안일 할 때 틀어주곤 했다
거기까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걸 보여주면 안좋겠다거나 뭐 그런 생각들
그런데 터미타임 장난감 [꼬꼬맘]을 처음으로 동작해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 아들의 경우 터미타임이 빠르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러다보니 터미타임 장난감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검색해보곤 했다
보통 하는 이야기가 어른이 앞에서 시선을 끌거나
'빛나고 움직이는 것'을 엎드린 아이 앞에 둬서 시선을 끌라는 것
혼자 육아를 할 땐 어른이 없을테고,
그럼 장난감을 줘야겠네. 아 저번에 내 친구가 사줬던 게 그거 같은데?
꺼내볼까?
그러곤 꼬꼬를 틀었는데 어찌나 요란하고 신나게 돌아다니던지
노래도 부르고 발발거리면서 온 매트를 옮겨다녔다
나도 어리둥절했고 같이 있던 엄마도 내 아들도 그 요란함에 모두 정신을 빼앗겼다
"어? 너무 자극적인데?
이게 3개월짜리 애기들 국민템이라고?"
검색해보니 맞다. 국민템이라 없는 집이 없다더라.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꼬꼬를 보자니 100일도 안된 아기에게 너무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마치 미디어 노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건전지 장난감들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
세상을 오감으로 느끼고 탐색해가는 이 어린 아기가 정신을 쏙 빼놓는 장난감들, 자신이 조작하지 않은 자극에 강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이 거북스러웠다
그리고 돌아보니 우리집엔 이미 많은 건전지 장난감들이 자리잡고 난 후였다
튤립, 에듀테이블, 타이니모빌...
결론은 꼬꼬는 팔아버렸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튤립은 최소한의 장난감 조작법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남겨뒀고
에듀테이블은 건전지를 켜지 않고 조작할 수 만 있게 거의 내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 돈주고는 건전지 장난감을 사지 않는다
아직도 종종 선물받는 장난감들이 있기는 한데...
그것들까지는 세상에 타협하자는 의미로 그냥 내버려 둔다..
(나 말고 다른 가족들이 육아할 땐 편하게 하시라는 의미로다가..
시어머님은 남들 다 있는 누르면 뽀로로 노래나오는 장난감이 이 집엔 왜 없냐고 여쭤보시기도 한다)
음 이런거다
내가 느낀 건전지 장난감의 단점은 자신이 조작하는 것 이상으로 과한 자극이 온다
버튼 하나만 눌렀는데 1분 동안 노래가 흘러나오고 온갖 효과음이 난다
그리고 그 버튼이 한 장난감에 여러개, 어떤 것은 몇 십개씩 달려있다
아가들이 각 버튼에서 나오는 소리와 의미를 이해하고 하나하나 누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거고
그렇게 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 그저 무분별하게 소리자극을 찾아서 버튼을 누르는 거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기가 1의 작업을 했으면 1의 결과를 얻는 원인에 결과가 따르는 과정이
세상을 알아가는 데 건강한 놀이방식 같은데
건전지가 들어가는 순간 영~ 뭔가 복잡해지는 것 같달까
예를 들면 오뚝이처럼 떨어뜨리면 떨어지고, 옆으로 움직이면 제자리에 돌아오는.
하나의 자극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들을 놀이로 체험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라고 느낀다
그리고 하나 더
나도 힘들면 건전지 장난감 줄 때 있다
왜냐면 건전지 장난감에서 주는 자극이 세니까 잠시 숨 돌릴 수 있어서
나같은 경우 건전지 장난감이면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그런 자극에 너무 익숙한 아이들일 경우에는?
더 자극적인 장난감, 혹은 미디어 같은 더 큰 자극을 찾지 않으려나?
선생님으로 살아 본 입장에서 아이들은 자극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더 큰 자극을 선호한다
집에서 유튜브 많이 보고 온 아이는 교실에서 안전교육 영상을 보여주면 지루해하지만
영상매체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안전교육 영상에 빠져있다
아무리 AI고 챗GPT 시대라지만
아직 이렇게나 어린 아가들은 부모가 일부러라도 아날로그를 고집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부모의 육아수고를 덜어주는 고마운 국민템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주는 자극의 세기를 한 번쯤은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라는 것
그러한 이유로 나는 더이상 건전지 장난감을 사주지는 않으련다
내가 하도 안줘버릇해서 그런가 지금은 사실 누가 건전지장난감 줘도 별로 흥미 없어한다
몇 번 누르고 다른 놀이 하러간다
예를 들면 뚜껑 닫기, 물건 숨기고 찾기, 붕붕카 타고 놀기, 책 보기 등등
누구나 그렇듯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나도 매일 나의 육아에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건전지장난감에 대한 생각만큼은 변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