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잃었음을 감지했다
문정부 나이로 32
윤정부 나이로 31
결혼한지는 4년이 되었고
임용된지는 3년
휴직한지는 1년 6개월째
아기를 낳은지는 1년 4개월차에 접어든다
내가 기대했던 나이에 '했었을 법한' 사회적 요건을 꽤나 충족했달까?
그 과정들이 힘들기도 여유롭기도 행복하기도 또 아무생각 없기도 했다
육아휴직으로 하루하루 아이와 살아가는 요즘인데
문득 '내 취향'이 많이 흐려졌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인디음악, 브릿팝을 좋아해서 음악을 하나하나 찾아듣고
CD플레이어가 보물 1호였는데. (비밀번호찾기 힌트에서 보물 1호는 언제나 CD플레이어)
코 묻은 돈 모아서 CD사서 모으고 친구들에게 그 시절 소리바다에서 불법이 되기 전에
다운받았던 노래들을 교실에서 공유해주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ses-be natural 레드벨벳이 리메이크 했더라?)
임용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찾아듣고 그 분위기에 젖어 공부하고 그랬었다
(다운의 마지막을 주구장창 들었더랬지)
그뿐인가 영화는 항상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무게있는 영화를 선호했고
하루에 3편을 보기도 하고, 영화 말미의 여운을 즐기곤했는데.
책도 마찬가지로 소설을 즐겨읽고 계발서는 사실 '취향'이 아니었는데!
사회인으로 10여년간 나의 역할이 바뀌고 또 가정을 이루다보니
시간이 없었나, 여유가 없었나, 생각이 없었나?
무엇이 바뀌었나?
나의 취향이 묻혀져가는 것 아닌가
결정적으로 내가 고민하게 된 계기는 1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이야기 자리였다
고등학교시절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주제가 나왔을 때
"그 때의 넌 너만의 세계가 강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평범해진 것 같아. 뭐랄까 사회에 적응해서 그렇달까?"
충격
학생시절의 나는 굉장히 둥글고 좋아하는 게 많던 놈이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1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조금 따가운 놈이 되었고
좋아하는 것도 많지만 소비보다 생산하는 것에 관심있는, 행하는 놈이 된 거다
어느순간부터 소비를 즐기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생산을 해내야 성공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박혀버린 것이다
근데 생산이라는 거. 그게 어디 쉬운가
인생 피곤하고 체력은 떨어져가고 육퇴하고 난 후엔 응당 쉬고싶으니
'아 책 읽어야 하는데... 아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 미루고 미루고 핸드폰만 붙들고 끝없이 자해하는 거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생산하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근데 내 취향을 즐기는 방법을 잊었더랬다 - 라는 사실을 다시 인지하고
즐기는 과정을 잃지 말아야 겠다 -- 라는 것이 이 글의 결론
왜냐하면 내 취향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인사이트가 생기는 것을 꽤 자주 경험했으니까
(결국 또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행하냐며 스스로 채찍질의 개념일 수 있겠지만? 어쩌겠어 이게 난데)
책을 읽고 난 후의 여운을 글로 남긴다던지
음악을 듣고 친구들에게 공유한다던지
영화를 보고 영화가 말하는 바를 해석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던지, 또 글로 남긴다던지
뭐 그런 거
난 그런 거 좋아하니까
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경제적 시간적 자유가 없는 몸이다 보니(?또 이유를 찾았나? 변명인가?- 의문)
친구가 보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내 즐길거리만 소비하던 학창시절보다 재미없는 내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실 난 그렇지 않다
내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이하며 꾸준히 열심히 살아왔고
또 이렇게 다시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말인데
이젠 유튜브프리미엄으로 아기 동요 100 반복듣기 이런 거 말고
내 노래에도 지분을 늘리련다
그리고 너무 길어서 시간내기 어려워서 선뜻 못보던 영화들도 다시 찾아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쏟은 작품을 즐기는 것은
단순한 소비만은 아닐거다
보고 듣고 느낀 후에 잘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면
학생때의 나보다 더 단단하고 정교한 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란 확신 -
그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이곳에 또 남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