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되니 알게 된 것들
지난주 숙모가 길 가다 넘어졌다고 한다. 누워서 꼼짝 못 하는 상황에서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119를 불러줘 병원에 실려 갔다. 온갖 검사를 받은 결과, 허리에 금이 갔는데 시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니 퇴원하되 집에서 꼼짝 말고 한 달간 누워있으라는 것이다. 집에서는 요양이 어려워 사설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다. 오래 있을 수 없어서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와 혼자 요양하며 지내고 있다. 길 가다 다쳤으니 그나마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집안에서 다쳐 며칠간 꼼짝 못 하다 발견된 경우도 주변에 흔하다. 어르신들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사고이고, 존엄성에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숙모는 작년에 삼촌을 보냈다. 갑자기 쓰러지셨고 간암 판정받았고 몇 달 후 돌아가셨다. 팔십 세였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 가 뵈었는데 숙모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삼촌을 보낸 후, 딸네집과 합치는 게 어떠시냐, 혼자 살면 무섭지 않나 여쭌 적이 있다.
“사람들이 나보고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냐 그러는데, 막상 있어보니 그렇지 않아. 장사 지내고 일주일은 딸네 있었는데, 그냥 왔어. 남편이 나 잘 못되라고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 위해주던 사람이고 보호해 줄 텐데 내가 무서울 거 뭐 있나 싶더라고. 딸네 살림보다는 내 살림이 익숙하고."
보는 입장에서는 혼자 사시는 게 여러모로 걱정이 되지만 듣고 보니 공감이 갔다. 딸의 집보다 내 살림이 편한 건 당연하겠지. 간장 고추장 어디 있는지 훤하고, 하다못해 먹고 싶은 거 하나 해 먹는 것도 누구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는 의미다. 굳이 혼자 사시는 이유다.
숙모는 입시생 아들을 둔 딸이 2-3일에 한 번씩 문안전화도 하고, 필요한 물품은 배달시켜 줘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낮시간에는 구경 가자, 공원 산책 하자는 이웃들이 있어서 쉴 겨를이 없다. 또래끼리 어울리니 나이에서 오는 차별감을 느낄 새도 없다.
70대인 숙모는 그렇다. 경로당은 나이에 맞지 않는다 생각되어 가기 싫고, 복지관에 월수금 배우러 다니기엔 힘이 부친다. 주간보호센터는 춤추고 노래해야 해서 싫다. 취향도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요양등급을 받아야 가능하다. 삼촌이 남겨준 약간의 연금은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고, 혼자 잠들고, 혼자 깨어나고, 혼자 아침상을 차려 먹는 것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절절할 것 같다.
초고령화시대다. 70세 이상 노인이 12% 이고, 그중 1인 노인 가구도 해를 거듭할수록 폭증하고 있다. 1인 가구 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가 70대다. (2021년 기준 18%, 2015년 기준 106만 가구)
핵가족화되면서 1인 노인 가구가 늘어나게 된 것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이기에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으려는 이유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자발적 1인 가구다. 예전에는 집안의 노인은 대부분 자식들이 모시고 사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혼자 사는 노인도 통계적으로 많지 않았기에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고, 그 수치에 주목하지도 않았다. 이제 이 분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70대 이상 고독사나 자살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숙모도 자발적 1인가구다. 스스로 생계와 취사를 해결해야 한다. 자식이 있고, 넉넉하진 않지만 치료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연금도 나오고, '깔고 앉은' 집도 있는데 늘 혼자여야 하는 상황이다. 혼자일 때 벌어지는 응급상황도 기가 막힌데, 다쳤는데 스스로 식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더욱 기가 막힌다. 이럴 때 나라에서 어떤 형태라도 함께 해 준다면 큰 힘이 될 터이다. 현재 숙모의 '다친 상황'은 장기요양등급에 해당되지 않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다. 다칠 때마다, 병을 하나씩 얻을 때마다 가진 돈에서 야금야금 꺼내 해결을 해야 한다. 바로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다. 우리도 언젠가는 부부 중 한 명이 혼자 남게 될 터다. 백세시대,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끼인 세대, '중산층 서민'의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