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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의 요정

초단편 소설집 #3

by JUNO


비누로 머리를 감으니 머리의 상태가 마른미역처럼 뻣뻣했다. 기분 탓이겠지만 머리도 더 빨리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다행히도 퇴근 후 떨어진 샴푸가 생각이 나서 마트에 들어갔다. 샴푸가 있는 코너에는 세일 중인 샴푸가 있었다. 샴푸통에는 ‘당신의 머리를 춤추게 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고 1+1 행사라고 적혀있었다.


행사 샴푸를 2개를 껴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바로 샤워를 했다. 새로운 샴푸를 써보고 싶어서 머리를 감았다. 샴푸에서는 오래된 장미향이 났다. 거품이 구름처럼 머리에서 부풀어 올랐다. 시간을 들여 거품을 씻어낸 뒤 샤워를 마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이상하게 머리가 곱슬이 되어있었다. 거울 속 얼굴도 조금 더 잘생겨 보였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내일 출근이라 계속 잠을 자려고 했지만 욕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물소리다. 나는 몸을 일으켜 스탠드 스위치를 켜고, 욕실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꿈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다.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 문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콧노래 소리다. 누군가 내가 잠든 사이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현관문 쪽으로 가서 문의 상태를 보았다. 문은 단단하게 잠겨있었다. 화장실에는 여전히 물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골프채나 야구방망이 같은 것이. 부엌 쪽에 식칼이 있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욕실 문으로 가서 귀를 대보았다. 여전히 콧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노래다. 하지만 무슨 노래인지 잘 모르겠다. 제목을 알고 싶었지만 지금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욕실 손잡이를 잡았다. 화장실에 불을 켜고,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욕실 안에는 하얀 거품이 사람형태로 서있었다. 샤워기 물이 바닥에 틀어져있고 샴푸가 넘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거품이 사람모양으로 자라나 있었다. 마치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야!?”

“음~ 음음음~~ 랄라~” 거품인간은 대답 없이 계속 콧노래를 불렀다. 춤까지 추고 있었다. 끔찍한 춤이다.

나는 무서워 손에 들고 있던 식칼로 그에게 휘둘렀다. 그의 몸이 반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재생되었다. 그리고 다시 콧노래를 불렀다.

“음~ 음음음~ 랄라”


나는 왠지 증거사진을 담아놓아야 할 것 같았다. 침대 위에 놓인 폰을 가져와 거품인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찰칵!"

“으악!” 거품인간이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 싫어하는 듯 보였다.

“찰칼! 찰칵!” 나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으악!!”


거품인간은 소리를 치고 점점 줄어들더니 작은 거품이 되어 하수구로 사라졌다. 작은 거품 두 방울은 사람의 눈동자처럼 보였다가 하수구로 마저 빨려 들어갔다. 나는 폰을 내려놓고 샤워기물을 잠근 뒤 샴푸 뚜껑을 꽉 닫았다. 그리고 샴푸를 들어 욕실 서랍에 넣어두었다. 욕실에 불을 끄고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심장 소리가 아직도 고동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일은 출근이다. 자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폰을 들어 사진첩을 열었다. 거품인간의 사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상하게 거품인간의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에는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느 때보다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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