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4
오늘도 구름을 그린다.
공원 벤치에 앉아 손바닥만한 스케치북에 연필로 구름을 채워넣는다. 하루라도 이 것을 하지않으면 안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이 스케치북 표지에는 숫자 3이 검은 포스카로 그려져있었다.
구름을 매일 바라만 봐도 알겠지만 매일 모양이 다르다. 어디도 똑같은 구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난 좋다. 인간이 모두 다른것처럼.
구름이 없는 날은 눈을 감고 구름을 상상한 뒤 그린다. 내 머릿속에서 구름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소리다. 멋지지 않은가? 다행이도 오늘은 구름이 멋지게 하늘위에 떠있다. 해가 지기 전에 빠르게 스케치북에 담자고 생각을 한 순간. 구름 모양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증거는 내 노트에 담겨있었다. 지금까지 그려온 모양이 사람 엉덩이 모양이라면, 지금은 체리 모양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나빴다. 욕이 나올것만 같았지만 빠르게 다음장에 체리모양 구름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내 손은 거침이 없었고 노련했다.
또 바뀌었다. 내가 미처 체리모양의 구름을 완성하기전에, 구름의 모양이 토끼 모양처럼 바뀌었다. 동물모양의 구름을 좋아하지만, 구름 모양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난 스케치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보았다. 이건 누군가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구름을 올려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연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내려다 보거나 멍하니 강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뿐이었다.
난 다시 하늘을 보았다. 다시 모양이 바뀌어있었다. 이번에는 고양이 발바닥 모양이었다.
‘젠장. 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 거지?’
난 스마트폰을 꺼내 변화하는 구름을 담아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주하고 있을때 구름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분명 흰색이 아닌 검은 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점점 카메라 앞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난 놀라서 폰을 떨구고 말았다. 다시 폰을 주우려고 했을떄, 무언가가 이상했다. 조금전까지 무언가에 열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멈춰있는것이다.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하늘에는 어느새 검은 물체가 가까이 와있었다. 거대했다. 빌딩하나가 하늘에 떠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게 원래 그 크기인지, 아니면 크기를 줄였다 커졌다 할수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수가 없었다.
분명한건 그 물체는 완전한 검은색을 띄고 있었고 점점더 모양이 커져 내 앞에 멈춰섰다.
‘UFO?”
내가 생각한 순간 물체에 문이 생기면서 누군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는 온몸이 털로 뒤덥혀있는 존재였다. 그는 내게 다가와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털로 뒤덥혀 있는 인간의 목소리는 컴퓨터로 내는 음성같기도 했다.
“외..계인?”
“어째서 매일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고있는거죠? 혹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입니까?”
“진짜였어. 외계인은 존재해.”
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당신을 제거해야겠어.“
“오해예요! 전 그저 구름을 그리는 취미가 있을 뿐입니다." 나는 벤치위에 있던 스케치북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털복숭이 존재는 가까이 다가와 내 스케치북을 낚아채고 첫 장부터 빠르게 넘겨보았다.
“음…정말이군.”
“당신의 존재는 비밀로 하겠어요. 살려주세요.”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우주선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스케치북 돌려줘!!” 내가 소리치자, 우주선에서 빛이 나와 나의 머리를 관통했다.
눈을 떠보니 난 공원 잔디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강아지와 놀던 남자가 나의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네. 잠시 어지러워서.”
“응급차를 부를까요?”
“정말 괜찮아요. 머리가 맑아진 기분입니다.”
그날 난 스케치북 3번을 잃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스케치북 3번을 구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