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집 #5
내가 최근 이발소를 가게 된 건 귀찮아서였다.
새로 이사 온 집 근처에는 괜찮은 미용실이 하나도 없었다. 괜찮은 미용실은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하거나 아니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만 했다. 그날은 그냥 기분이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어느새 길어진 머리가 싫었다. 긴 머리 때문인지 그저 내 마음의 문제인지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대로 나는 머리를 말리고 집 밖을 나갔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이발소에 들어갔다. 70대로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 티브이는 그나마 이발소에서 가장 최신처럼 보였다. 이발소 의자 소파, 심지어 가위까지 모두 낡아 보였다.
“머리 자를 수 있나요?”
“문 열어봤는데 당연하지. 앉아”
매우 시크하게 할아버지는 내게 말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는 외투를 벗어서 소파뒤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 의자에 앉았다. 고속버스 우등의자와 비슷한 느낌의 의자였다. 할아버지는 내게 하얀 가운을 두르고 내 머리에 물을 뿌렸다. 거울 속 주인의 얼굴은 어딘가 불만이듯 보였다.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머리가 길군.” 주인은 짧게 대답하고 자세한 설명 없이 바로 가위질을 했다. 노련한 손돌림이었다. 무림의 고수가 칼을 휘두르는 것 같이, 그는 거침없이 내 머리카락을 잘라나갔다. 그의 불만 있는 표정도 고수의 표정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티브이에는 '나는 자연인이다' 소리가 났다.
“오늘 운이 좋네”
나는 티브이에서 나오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잠시 감고 생각해 보았다.
‘운이 좋네...’
주인 할아버지는 머리를 깎는 중간에 소리를 냈다. 눈을 떠보니 금세 내 머리는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머리에 손을 댔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앞머리를 거침없이 잘랐다.
‘운이 좋네’
“에헴, 저기서 머리를 감고 오시게” 주인 출입구 쪽 옆에 있는 세면대를 가리켰다.
“아, 네”
나는 일어서서 그곳에 가서 물을 틀었다. 샴푸로 보이는 햐안통과 비누만이 존재했다. 나는 물에 머리를 박고 머리를 감았다. 따뜻한 물은 나오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여름이었기 때문에 그냥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샴푸통에는 몇 번이고 펌프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머리 위에 서랍에서 하얀 수건을 한 장 꺼내 머리를 털었다. 주인은 잘린 내 머리카락을 먹다 남은 음식이라는 듯 치우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의자에 가서 앉았다. 주인은 다가와서 다시 가운을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그리고 보니 드라이기라고는 없다. 그는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버리고는 다시 가위질을 몇 번 했다.
“다 됐네.”
“아, 네 감사합니다. 얼마죠?”
“6천 원”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그리고 이발소를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데 손에 든 지폐를 세어보았다. 천 원짜리가 5장이 들려있다. 주인이 천 원을 더 준 것이다.
‘운이 좋네’라는 생각이 났다. 나는 그냥 집으로 가려다 발길을 돌려 이발소로 들어갔다. 내가 다시 이발소로 들어가자 주인은 냉장고에서 서서 소주를 벌컥벌컥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제가 천 원을 더 받은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천 원을 건네자 주인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천 원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았다.
나는 가게를 나와 고개를 꺄우뚱하고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머리는 시원했고 비누냄새가 났다.
“운이 좋네”라고 소리 내어 나는 말해보았다.
기분은 조금은 나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