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6
이력서를 서른 장 넘게 냈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오늘 그 회사에 간다.
옷장은 비어 있었고, 나는 ‘최대한 단정한 차림’을 입었다.
현관에서 어머니가 말없이 서 계셨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셨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 손을 펴보니 5만 원이었다.
나는 돈을 주머니에 대충 꾸겨 넣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면접 볼 회사는 집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먼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하철에서 예상 질문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곧 포기했다.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게 군대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면접을 볼 회사는 커다란 빌딩 건물 안에 있었다.
1층 로비에서 여직원이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키는 크고 얼굴이 작은 여자였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통유리로 된 깨끗한 회의실이 있었다.
유리 넘어 많은 직원들이 일을 하는 게 보였다.
자유로운 분위기처럼 보였다.
나는 강 넘어 모르는 마을을 구경하듯이 잠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쪽에 앉아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여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사라졌다가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면접은 누구와 보는 건가요?”
“회사 대표입니다.”
그녀가 사라지니 다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고 스마트폰을 꺼내 무음을 확인했다.
가방을 괜히 열고 닫았다.
잠시 뒤 내가 들어온 입구에서 한 사람이 등장했다.
작은 키의 사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새의 얼굴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텐가? 자리에 앉게.”
“네... 죄송합니다.”
“다들 그렇게 반응한다네. 익숙해졌어 나도. 에구구, 내가 면접을 맡은 이 회사 대표라네.”
“아, 네. 안녕하십니까. 놀라서 죄송합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에구구, 얼굴에 땀이 많이 흘르고 있군. 이걸로 닦게.”
그는 테이블에 있던 휴지곽을 내게 건넸다.
나는 이마에 땀을 닦았다.
휴지가 금세 젖어버렸다.
땀이 났는지도 몰랐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회사 대표는 내 이력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구구, 음... 포트폴리오는 가지고 왔나?”
나는 가방 속 포트폴리오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포트폴리오를 건네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내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보았다.
나는 조심히 그를 쳐다보았다.
새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의 얼굴 표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면 안에 자신의 표정을 가리기 위해.
아니면 얼굴에 큰 상처를 가리기 위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 좋아. 좋아. 마음에 들어. 내일부터 출근하게.” 그는 말했다.
“내일부터요?”
“왜 문제 있나? 에구구”
“아.. 아닙니다. 당장 내일부터라고 하셔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자네가 할 일은 며칠 동안은 딱히 없을 걸세.
천천히 일을 배우고 적응하면 된다네. 부담을 갖지 마. 에구구.”
“아.. 네.”
“우린 매일 야근을 한다네. 대신 택시비는 지급이 되지. 에구구.
주말에도 출근을 하게 될 거야.
인턴으로 들어오는 거고.
가족 같은 분위기야. 당신도 이제 내 식구가 되는 거라고.
어때 문제 있나? 에구구.”
“아, 아닙니다.”
“좋아. 좋아 아주 인상이 마음에 들어.
사실 당신을 딱 보는 순간 내 아들 같다고 생각을 했지.
면접은 이걸로 끝이네. 그럼 내일 보세. 에구구”
그는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비는 그쳐있었다.
내일부터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빌딩, 회사, 유리된 회의실, 가족 같은 회사...
그런 모든 것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그곳에 있는 내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동네 역에 도착에 전화를 꺼내 면접을 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를 면접장으로 안내해 준 여자가 받았다.
나는 정중히 출근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유감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절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전화를 끈 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오랜만에 담배가 피고 싶어 졌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다가 어머니가 아침에 주신 5만 원짜리 지폐가 손에 잡혔다.
돈을 꺼내 바라보았다.
지폐 속 위인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돈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말보로 담배와 라이터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 바로 옆에 있는 피시방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