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8
12시가 넘은 밤,
나는 동네를 방황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편의점을 찾고 있다.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서다.
평소라면 맥주를 냉장고에 가득 넣어 놓지만,
며칠 회사일이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집 앞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음료 코너로 갔다.
내가 늘 먹던 맥주가 보이지 않는다.
냉장칸에 희미한 조명에 깜박거릴 뿐이었다.
나는 요즘 한 맥주에 푹 빠져있다.
독일에서 만든 맥주다.
수확이 없는 어부의 마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낙엽이 발아래에서 뒹굴었다.
괜찮다. 조금 떨어진 편의점하나가 더 있다.
초가을이었지만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신발은 갈색의 버켄스탁을 신고 나왔다.
걷다 보니 차가운 공기가 콧등을 스쳤다.
회사 상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두 번째 편의점은 문이 닫혀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런 날인 것 같다.
유리문 앞에 종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전 7시~ 오후 12시까지 영업.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2:32분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이 들었지만
원하는 맥주를 꼭 먹어야만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그만 더 앞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걷다 보면 편의점 하나쯤은 또 나올 것이다.
그런 세계다.
다행히도 10분쯤 더 걸으니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찾던 맥주도 있었다.
맥주캔 4개를 꺼내 카운터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희미하게 웃음이 세어나왔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직원이 말했다.
‘신분증?’ 깜박하고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감사하지만, 전 직장인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술을 사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신분증 주세요.”
“급하게 나오느라…. 카드만 들고 나왔는데..”
내 얼굴은 어색한 미소로 바뀌었다.
점원은 영화 속 보디가드처럼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점점 그의 얼굴이 도깨비 모양으로 변해갔다.
빨간 얼굴을 한 도깨비.
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어쩔수 없이, 다시 맥주를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고
젤리를 하나 집었다.
무언가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았다.
“이거라도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카드를 다시 내밀었다.
“이 젤리 1+1행사 중입니다. 하나 더 가져오세요.”
도깨비 얼굴의 점원은 어느새 사람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아기천사의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그 변화의 격차가 너무 커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나는 젤리를 하나 더 집어서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나는 젤리와 카드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편의점을 나왔다.
몸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더는 돌아다닐 기분이 아니었다.
다시 집 앞 옆의점에 들어가
아무 맥주나 골라 카운터에 올려 놓았다.
“다시 오셨네요?” 점원이 말했다.
“찾는 맥주를 사러 저 밑까지 갔다 왔는데 헛걸음 했어요.” 나는 말했다.
“이 맥주가 기분을 풀어드릴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힘겹게 사 온 맥주를 컵에 따라 마셨다.
안주는 젤리였다.
젤리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의자를 고쳐앉았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