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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미안한 몇가지 이유

초단편 소설집 #9

by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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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한테 미안한 것 없어?”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카운터 쪽에서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가 났다.


나는 그제야 인스타그램 속

다른 여자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감정도 들어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련한 도박꾼처럼.

커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음…없는데?”나는 말했다.

“정말 없어?” 그녀가 다시 묻는다.

나의 카드를 정확히 무력화 시켰다.


나는 또 침묵한다. 이상하다.

그녀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을것이다.

설마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여자 사진을 보는 걸

알게 된 걸까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말해봐. 지금 말하면 다 용서해줄게.”

또 다시 공격카드.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일그러져 보였다.


나는 깊이 생각한다. 바다속으로 잠수한것처럼.

그리고 해녀가 해산물을 끌어올리듯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와 수확물을 건내는 것처럼.

신중했다.


그녀는 배 위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고있다.

바닷속에는 무엇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최근 너의 메시지에 바로 대답을 안했던것 같다. 미안해.”

“그건 이미 저번에 사과했잖아. 딴거”

어쩌리. 그녀는 내가 수확한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잠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커플링을 안차고 왔네... 미안”

“다음엔 꼭 차고와. 안그럼 너의 손가락하나 잘라버릴거야. 딴거.”


“저번에 회사 회식이라고 한거 거짓말이였어.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피시방에서 게임했어. 미안”

“그랬구나. 괜찮아. 스트레스가 쌓이면 안좋지. 이해해. 딴거”

나는 더 깊이 잠수해야만한다.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아! 생각났다. 일단 먼저 사과할게”

“뭐든 용서할게 말해.”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너랑 사귈때 쯤 사이버 여자친구가 있었어. 게임상에서만 연애하는…

뭔지 알지? 너랑 만나고 곧 헤어졌어”


“아~ 그래? 그 사람 아마도 남자였을거야. 오케이.

다시는 피시방 가면 손목을 잘라버릴거야. 딴거”

이번에는 좀 결과물이 컸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모아 잠수했다.

캄캄한 바닷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것을 힘껏 움켜쥐었다.


“나 사실 한달 뒤에 일본으로 워홀에가. 미안.”

“쓰레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뺨을 쌔게 후려쳤다.

귀에서 삐소리가 났다.

나는 귀를 움켜쥐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잠시 나를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내가 끌어올린 것들이 모두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날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뭐든지 날 용서한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귀 속에서 작게 고장난 축음기 같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며 식은 커피를 마셨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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