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상이었던
주말에 신해철 10주기 콘서트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이고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10년이라니. 나도 나이가 꽤 들었군. 평소 나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다가, 아는 유명인의 이런 소식을 들으면 절로 체감이 되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해철이라면.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 한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실패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싫어서 마냥 하는 척을 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다. 당연히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학급 내에서 평가가 안 좋았다. 같은 교실에 있는 애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고 그것에서 벗어나올 방법이 보이질 않아서 늘 사람을 피해 다녔다. 지옥 같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집 밖으로 잘 안 나갔다. 집에서도 방에 혼자 있는 게 좋았다. 부모님과는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다.
공부도 안하면서 그래도 공부한답시고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실은 라디오를 틀어 놓고 유행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새벽 2시까지 라디오를 듣던 중 갑자기 이상한 BGM과 신해철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방송 이름은 고스트 스테이션. DJ 신해철은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칭하고 지하세계 라디오를 표방하면서, 한껏 가라앉은 저음의 목소리로 과감없이 말하고 싶은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일반적인 방송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라기 보다는, 그냥 아는 형이 자기가 살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필터없이 듣는 것 같았달까. 성공하고 잘난 사람이 말까지 잘 하니 ‘처음에는 뭐 이런 게 있나’ 싶다가 워낙에 입담이 좋아서 금새 빠져 들었다.
하루 이틀 듣던 라디오를 거의 매일같이 듣게 되었다. 고스트 스테이션을 듣기 위해 늦은 밤이 오길 기다렸다. 방송이 끝나면 얼른 다음 날이 되어 다음 방송을 듣고 싶었다. 난생 처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다. 닮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의 음악을 들었고, 그의 말투를 따라 했고, 그처럼 생각하려고 했다. 나한테는 부모님보다도, 선생님보다도 더 어른 같은 사람이었다. 신해철 덕분에 나는 나의 힘든 고등학생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그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있었던 것을 까먹었기도 했다. 다른 음악에 뭍혀서 그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가끔 매체를 통해 신해철을 접할 때가 있었는데 여전히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웃었다. 나의 한 시절을 버텨내게 해준 사람, 내가 닮고 싶었던 모습.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이라서 좋네. 계속 그렇게 살아줘. 마왕.
그러던 중, 그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믿기지 않았고 정신없이 장례식장에 갔던 것 같다. 나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그의 노래를 오래도록 불렀다. 집에 오는 길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인데.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는 이제 세상에 없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났다. 세월이 야속하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곤 한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영향력을 펼쳤을까. 속 시원하게 해야할 말을 할 수 있으면서, 약한 자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