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에 잠이 잘 안 와서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늦게 잤다. 저번에 글감옥에서도 언급했던, 서버 종료가 얼마 안 남은 게임을 좀 했고, 유튜브 영상(요즘은 알고리즘 추천으로 뜬 영상 소재가 거의 <흑백요리사>, 아니면 한강이다)을 몇 개 보다가, 얼마 남지 않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끝까지 다 읽었다.
<채식주의자>는 하도 사람들이 읽기 힘들다고 겁을 주길래, 조금 걱정을 하며 책을 펼쳤는데 의외로 읽을 만해서 이틀인가 사흘만에 다 읽었다. 전체적으로 문체가 유려하고 깔끔했고 갑자기 사건을 전개할 때의 폭발력과 묘사력은 정말 대단했다(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읽으면서 감탄). 아무튼 읽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되려 읽을수록 어떻게 사건을 전개할까 두근두근하면서 읽었다. 흡입력이라고 해야 하나, 한 번 읽으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그런 매력을 가진 책이다.
읽다 보니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는 지점이 뭔지는 알겠다. 개인적으로는 읽는데 크게 거부감이 들거나, 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소설은 작가가 만든 허구의 세계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오로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흐름일 뿐이라고, 거기에 너무 몰입하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소설 속 인물이 왜 그랬는지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랬더니 받아들이는데 크게 무리 될 것은 없었다. 아무리 소설의 내용이 극단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이 그보다 더하지 않은가(당장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며칠 전 갔던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떠오른다. 직원들이 막 들어온 한강의 책을 진열하고 있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손님들이 바로 책을 집어서 계산하러 가는 풍경. 아니,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그 책이 실시간으로 계속 팔리고 있다고? 나한테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한테는 그것이 더 비현실적이었다.
대충 마감 시간이 되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나는 바로 몇 달 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소설보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있었다. 매년 4분기 별로 한창 뜨고 있는 신진 한국 문학 작가들의 단편을 수록한 포켓북 사이즈의 책인데, 글의 양이 많지 않아 출퇴근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각 작품이 끝나면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재미있다. 그 시리즈를 통해서 새로운 작가도 많이 알게 되어 따로 작품도 찾아보기도 했다. 어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한국 문학이 요즘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이제 하나하나 알고 있지만, 알면 알 수록 한국 문학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읽어야 할 책이 참 많아서 행복하기도 하고 그러는 요즘인데, 우주의 기운이 내 주변으로 모이고 있는 것일까. 내 생전에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한강의 작품을 만난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는 거다(이 글을 쓰면서도 이제서야 제대로 읽고 있음을 반성 중). 다음에는 <소년이 온다>를 읽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것이다.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