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영서 Nov 26. 2021

가진 적 없는 것을 잃은 비용

정작 잃은 것이 없는데도

이 글을 쓰는 것이 몹시 주저되어 빙빙 돌 수밖에 없다.


오래전 우리집 거실 한쪽에는 아주 커다란 전축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라디오, LP 턴테이블 그리고 거대한 두 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전축이었는데 아래쪽에는 레코드판을 모아두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는 비틀스, 클래식, 김광석 같은 대중가수들 그리고 화려한 화장의 소프라노의 LP판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이 사람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여왕이 꼭 이런 행색이었지 아마.

 

키메라. 오페라 익스프레스

종이 재질의 레코드 케이스 앞면의 사진이다. 그리고 뒷면에는 마찬가지로 파격적이고 전위적이고 화려한 얼굴 분장을 하고 한복을 입은 작은 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다.


두 눈을 중심으로 한 분장의 주제는 동양이었는지 키메라의 얼굴에 두 마리의 학이 마주 보며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지금도 너무나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으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이미지가 나오지 않으니 내가 설명해볼게요.






한복을 입고 머리는 쪽을 지어 이마 정중앙부터 정갈하게 가르마를 탔다.

양 눈은 서로 마주 보는 학이 되어 학 두 마리의 날개가 얼굴 양 옆으로 펼쳐져 있었다.

코를 중심으로 서로 부리를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다.

학의 붉고 까만 머리는 눈꺼풀 깨로 묘사되어 있다.  


아래의  사진이 그나마 비슷한 느낌인데. 저 눈 화장이 날개를 펼치고  마주 보는 학 두 마리라고 보면 된다.



키메라의 얼굴에서 날고 있는 두 마리의 학과 또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얼핏 무질서해 보이지만 질서 정연한 저 LP판 표지의 무늬와 묘사 하나하나를 샅샅이, 집요하게,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가면처럼 묘사된 저 동물들 묘한 대칭성에 빠져들었다.

왜 꿀벌이 코끼리만 하지?  개구리 옆에는 무슨 동물이지? 양 옆으로 점점 작게 묘사된 동물들은 어떻게 저기에서 안 떨어질 수가 있지?



그리고 저 길 뒤에는 뭐가 있을까?  저 동물들은 어디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것일까.

 




아직도 이 글을 쓰는 것이 주저된다.


2019년 6월 초, 수년 동안 응원하던 예술가는 사각 테두리 액자 안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

상투적인 말일지 모르나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으며 특히 최근 진행했던 펀딩은 정말로 성공적이었는데.


나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까지는 아니겠으나 무언가 아주 커다란 것이 빠져나간 것 같은데 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정작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럼에도 느껴지는 이 큰 상실감은 허상인가.  그런데 왜 내가 저분의 죽음에 이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이것은 슬픈 것인가? 나는 슬퍼해야 하나? 누가 좀 알려줬으면.

너무 슬펐으나 사실 슬퍼할 이유가 없었고, 애도하고 싶으나 마땅히 애도할 방법이 없었다.

혼자서 하고만 있던 생각이었지만 다음 전시 때는 한 점이라도 소장하려 마음먹고 있었다. 레플리카가 아닌  저 질감을 반드시 나는 가져야만 하겠어.

  

그날의 마지막 sns 내용을 기억한다. 아마도 마지막 말인 듯 보이는 그 내용을 다시 읽기 두려워 스크롤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계정을 이 상태 그대로 두겠다고 밝히신 유가족은 작년에 이어 올해 6월에도 2주기를 기리는 짧은 글을 올리셨고. 유가족의 말씀을 보고 용기를 내었다. 그런데 이게 용기가 맞을까.

애도하지 못한 비용과 시간을 털고 싶었나. 언제부터 소유하여 사랑했다고. 그러나 완료하지 못한 상실은 마음의 짐이 되어 이제 그만 털어내고 싶었다.


정말로 주저되어 완곡하게 전달하려 애썼으나 돌아온 답은 처음 한 공지와 같이 유작 전시회를 계획 중이며 작품에 대한 판매는 그때가 될 것이며 계획 중이나 아직 예정에는 없음을 알려주셨다.

죽은 딸의 계정에 남긴 DM에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답을 주신 아버님의 심정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이 채널을 유지하고 계신 이유처럼, 작품을 사랑한 마음은 전해졌고 그것이 그분께 작으나마 위로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무엇에 깊이 매료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마이클 잭슨의 눈 밑 코끼리와 꿀벌을 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좁다란 그 길. 가보지 못한 그 길의 뒤가 바로 당신의 그림 같았다. 그래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저 좁은 길 뒤를 그린 것 같다.

속눈썹 한 올 한 올과 가득 들어찬 질감이 꾸지 못한 꿈같고, 기묘한 대칭 구도는 하염없이 바라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포근하나 머리를 대면 머리통이 그대로 파묻혀 그대로 사근사근 질식에 이를 것 같은 질감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 어째서인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겠다.  




위의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하고 영속적인 자유 속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기를..

작가의 이전글 허세의 가성비를 최대화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