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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May 25. 2023

본 대담에 참여하게 된 계기

20230325

본 대담에 참여하게 된 계기     

 퍽 건강하지 못한 나날들이 이어져도 아이는 자라난다. 길고 무서운 클라이맥스가 그래도 하향곡선이 되었을까 싶을 때 한 연락을 받았다. 신중하게 자라는 아이를 키우며 썼던 글을 보고 연락하였으며,'OO 을 넘어 OO으로' 라는 주제로 이루어질 OOOO에서 양육자로서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내가 느린 학습자로 통칭 되는 아이들과 그 양육자를 대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고사하려 했다. 내가 뭐라고 대담 같은 것을 하겠나. 느린 학습자의 권리나 미래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는 단체, 학부모회 등이 적절하지 않으시겠냐는 답변을 우선 드렸다.      

 느린 학습자를 위한 지원방안과 인식개선을 위한 공청회 또는 정책토론회 등에서 볼 수 있는 학부모 대표들은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저마다의 사연을 강단 있는 목소리로 풀어낸다. 현 제도권 안에서 도저히 아이를 보호할 수 없었던 사연들을 들며 강력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인식의 변화와 포용적인 사회를 요구하기도 한다. 분명히 특수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나 그렇다고 통합교육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놓인 한 아이와 그 양육자인 우리의 사소한 이야기에는 그럴만한 힘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했던 지난 과정을 다시 복기해보는 것은 괴로울 것이 당연하고, 지나간 괴로움이 클라이맥스였을 것이라 최면을 걸며 앞으로 잔잔한 결말과 에필로그만이 남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으리란 것 역시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최대의 말조심을 하며 때로는 비굴할 만큼 납작 엎드리기도 하다가 어느 날은 실체 없는 대상과 협상하려 들기도 하고, 꾸준히 자라고 있는 아이의 성장에 감사하다가도 작은 것에 일희일비 널뛰지 않으려 마음을 차갑게 굳히려 애쓰는 날의 연속에서, 어느 하루 다양한 층위의 전문가들 앞에서 도움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의 당사자로서 나선다는 것은 분명 훗날의 후회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내 입장을 구태여 확인하고 싶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도 또 나의 이야기도 할 용기 따위 추스려볼 기력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말에도 힘이 있다고 믿기에 미래의 후회가 될지 모를 모든 일들이 두렵고 위축된 마음 정도야 이 정도는 쥐고 있어줘야 나도 나를 보호하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상 발달이라는 개념을 허물고 싶다는 OOO 학술위원장님의 말씀과 발달의’해체’라는 기조 강연 키워드에 도리가 없을 정도로 귀가 솔깃 해버렸다. 평균적인 정상 발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큰 비용과 많은 시간을 들여 지금까지 달려오는 동안 어느 곳에서도 듣지 못한 단어이다. 


 ‘어쩔 수 없어요. 이 아이만의 속도와 강점과 개성을 살려 최대한 일반화 시켜보아요.’ 


  이 말의 의미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도 명명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된다. 가능한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의 지적, 사회적 능력을 키워내어 행복하게 자립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비전을 잡고 내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고야 말리라. 세상 어떤 부모도 같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단단하게 굳은 결심의 강도만큼 움켜쥔 의지의 밀도만큼 갈라지는 금은 아프게 난다. 미세한 실금 하나 조차도 몹시 쓰라리다. 그렇다고 마냥 한없이 아끼며 희망만을 품는 것도 정답은 아닌 이 기약없는 애매한 골짜기에서 전전긍긍 일반화의 산을 오르는 양육자들에게 다른 이정표도 하나쯤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글 보다는 사건 기록에 가깝던 아이의 성장 기록은 이미 두어 달 전에 그만두었다. 혼자 읽기 위해 미친 듯이 쓰던 그 기록들은 그만두고 나서야 자해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다.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 그래, 마음 가는 대로 한번 해봐도 되지 않을까. 뒤를 돌아볼 기회가 절실했다. 완벽한 타인들이 들어준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실과 현실과 진실은 늘 같지 않다고 믿는다. 하나의 사실에도 얽힌 인간관계만큼의 다양한 현실이 실재하며 각기 순도 높은 진실을 가진다. 때론 그 진실들이 서로 상충할지라도. 말에는 힘이 있고 이야기와 서사에는 위력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단어로 정의 하느냐에 따라 힘의 방향과 성질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어떠한 이야기와 서사로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그 위력이 온갖 방향으로 겹친 무수한 화살표를 혼자서는 갈 수 없던 한 점으로 당겨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재구성의 의지 정도는 스스로 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충동적으로, 그렇다면 그 대담에 참여해보겠다고 답변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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