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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Nov 18. 2021

이제 제가 1,000권의 책을 먹어볼게요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자 제가 1,000권의 책을 읽어볼게요.

먹방 같은 독서 기록, 맛집 인증 같은 독서 인증

 

한 끼에 만 칼로리 먹는 대식가 유투버가 산더미 같은 음식을 얼굴 앞에 배치하고 본인은 뒤로 빠져 숟가락과 입만 움직이는 구도가 아주 익숙하실 듯합니다.

자 제가 한 끼에 등갈비 30인분과 후식으로 삼봉오란 가보겠습니다.  여러분 같이 가시죠.

자 제가 1,000권의 철학서와 인문학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가시죠.


매 끼니 산더미 같은 음식을 퍼먹어도 날씬한 대식가 유투버의 육체처럼

매 시간, 매일, 매주 현학적인 철학서적과 인류의 보고 인문학과 성공에 이르는 온갖 열쇠와 비밀을 말끔하게 해치우는 다독가들의 정서함양도 늘 거기서 거기로 날씬해 보인다.  

먹은 것이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우와!

읽은 것이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우와...


알 수 없지 않은가. 산더미 같은 음식을 냠냠 잡수신 후 돌아서서 토하는지

현학적인 책의 글자를 눈으로 읽고 늘 하는 천편일률적인 찬양을 늘어놓고 또다시 다음 책을 잡을 뿐인데

먹방 유투버가 한 입 먹고 맛을 설명하고 두 입 먹고 맛을 설명하고 마지막 한 입을 말끔히 해치운 뒤 내가 늘 아는 그 맛을 찰지게 표현해줄 때의 흥미만큼이나 책 이야기를 발췌하여 끌어다 쓴 책 먹방 콘텐츠의 먹방 후기가 신선하다면 좋으련만.


님이 드시는 라면은 내가 먹는 라면과 다른 맛이 날 것 같아요. 먹어보고 싶어요.

님이 읽으신 그 책을 내가 읽어도 님처럼 저자를 찬양하며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것 같지는 않아요.

먹고 싸고 그 사이의 부산물로 생명을 영위하듯

읽고 싸고 그 사이의 부산물로 자아를 영위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허무하다고. 수 천년 전 철학자가 허무하다 느낀 지점을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지점에 내가 또다시 똑같이 허무하다 느끼는 것에는 끈적한 의미부여가 필요치 않

그저 알 수 없을 뿐이다.  읽어도. 읽지 않아도. 


독서란 곧 경청이며, 경청이란 곧 집중하고 반응하고 되묻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란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가. 어떤 이들은 문학을 잃지 않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허구의 세계가 쓸모없다 믿고, 당장 써먹을 만한 지식을 알려 주는 책만이 가치 있다 여긴다. 그러나 비효율이 곧 우리가 삶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임을, 더 나아가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힘임을 경청하는 이들은 안다.-『책의 말들』김겨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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