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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Jun 26. 2023

찰스 디킨스적 깍두기 담기

두 다라이 이야기

 20230625


※ 노여움 금지



무 절이기 딱 좋은 온도이면서, 최악의 습도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면서, 혼자서 뭘 해본 적 없고

세상은 넓어져도, 식견은 한 줌 구멍이고

부귀가 넘치면서, 물가는 아득히 높고

가능성은 무한한데, 다들 가난한 계절이고

완벽한 삼각형의 가정이면서,

각설탕의 가운데부터 녹아내리는 집구석이었다.





시대


 199n년 같이 도시락 까먹던 친구는 극심한 야채혐오자였다. 지는 야채를 절대 먹지 않음을 친구 엄마들이 나름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 반찬들이 빼곡히 모인 책상에서 당당히 선포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다채로운 반찬을 먹고 싶은 도시락 메이트의 수저질에 제약을 걸진 않았다. 지 먹을 반찬이 없으면 밥만 퍼먹는 그 정도 의리는 있는 야채혐오자였으며 가끔 야채를 보충해야 한답시고 형광초록 야채크래커 비닐을 벗겨 톱니바퀴 모양 소금이 박힌 이름만 야채 밀가루크래거를 어디서 구한 일회용 케첩에 찍어 먹는 자체 보완책을 구사하기도 하는 실리주의자이기도 했다.


  야채 크래커도 야채고 토마토 케첩의 토마토도 야채잖아.


 본인이 허락한 규제 아래 야채에서 탄생한 반찬도 가끔 먹기도 했으나 그 재료 규격, 요리된 정도, 색상 등등 별 쓰잘 떼기 없는 헛소리를 붙여 까탈을 떨어대며 먹거나 먹지 않았다. 그냥 먹어도 아무도 뭐라 할 이 없으나 혼자 상세설정끼리 부딪히지 않으려 더 설정을 덧붙이는 식의 설정오타쿠짓을 끊임없이 해댔으나, 20년 후에는 모두 제 자식, 가족의 식탁, 하다못해 제 한입에 들어갈 밥상을 책임질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곤 하더라도 그때만은 어떤 밥투정을 해도 그래도 아직은 괜찮았던 10대들이라 그 야채혐오자가 하는 헛소리들이 나를 비롯한 도시락메이트들의 짜증, 재수 없음, 어이없음, 쟤 왜 저래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고 그냥 웃겼다.


웃기는 짜장 같으니.


 그 야혐자의 규제에 통과한 야채 반찬 중 하나는 완벽한 정육각형 깍두기 되시겠다. 절대 무 가생이 부분이 포함되어 라운드진 모양이 있어서는 안 되고 6개의 면이 모두 무 속살의 단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하며 많이 절어져 씹을 때 비리비리하면 또 안 되는 것은 물론, 다시 밭에 돌려보내도 헤헷. 저 좀 빨개요. 그래도 풋풋하니 다시 돌아왔어요 할 만한 덜 익은 무 역시 먹지 않았고 그 절인 정도 익은 정도는 정육면체 모양처럼 타인의 눈에도 감별되는 것 아닌 그냥 저만 구분하는 설정이라 내 입에는 다 익었는데 싶어도 왜 너는 싫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 껍질이 100% 생생한 총각김치나 푸릇푸릇한 무청은 절대 입에 넣을 수 없는 음식이었고, 편식.. 이라기에는 많이 과한 그의 식벽은 야채에만 있지는 않았다. 실은.


 과연 야채혐오자 친구는 학교에서만 저 자발을 떨었을까. 아니었겠지.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었고 눈이 컸고 몸도 말랐고 색소가 옅은 친구로 기억한다. 과연 그 모친은 그 뻘소리를 다 들어주시기는 했을까. 모친이 되어본 다음에야 그 모친은 어찌 걔를 먹여 키웠을까 싶어지는 것이 바로 오늘, 때는 바야흐로 서기 이천이십삼 년 유월 이십오 일, 석유가 고갈되어 지구가 망할 것이라 듣고 자라 보니 있는 석유 다 파내 쓰기도 전에 살살 삶겨 익혀 구워 사이좋게 멸망 오 분 전으로 어깨동무 중인 평범한 날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번 깍두기를 담가볼까 하는 마음이 떠오른 날일 뿐이었다. 오만 일이 사방에서 끝없이 일어나니 지난주의 일을 뒤집어쓰다 보면 이번주가 되고 이번주의 일과 지난주의 일을 분리세탁도 하기 전에 다음주가 닥치는 그런 산더미만이 풍요롭고 그득한데 와중에 갑자기 까마득한 시절의 야혐자 친구가 뇌리에 떠올라 무 하나 어찌 처단해 보려고 마음먹고 선 부엌의 벽, 그 뒤에 서있는 방조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와 더럽게 까탈스럽던 남의새끼와 내 새끼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리라.

 저렇게 야채뿐만 아니라 모든 먹는 것에 까탈스러운 아이 뒤에는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하고 우리 모두 그냥 멀쩡하게 살았다.  원래 대충 무섭고 적당히 섬뜩한 상황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사는 것이지. 오늘처럼.


 

무를 주세요


 야혐자 친구를 떠올리며 무껍질을 벗겨내고 원반 모양으로 자를 무를 격자무늬 칼질로 다스린다. 아니다. 원반 모양으로 자른 다음 두꺼운 원반을 들고 옆의 무 껍질을 벗기는 게 한결 수월하다. 무 한통은 꽤나 무거워 왼쪽 손목이 빌빌거린다. 아니다. 원반모양으로 자르기 까지도 오른 손목 왼 손목 모두가 빌빌거린다. 스물한 살 때 맥가이버 칼로 수박 자른다고 개설치다가 그 칼날이 접히는 바람에 오른손 소지를 자를 뻔한 역사가 있는데 그때보다 이 손의 약력은 강해졌을까. 강해졌다가 쇄락해져 가는 중일까. 응급실에서 꿰매 붙인 바늘땀은 오른손의 악력이 견디다 못해 함께 뜯어질 때까지 손가락 수만큼의 다섯 땀을 움켜쥐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 한통 정도는 그냥 쪼갤 수 있도록.    



싱크대에 무를 절이자


  짜빠게띠 면 삶은 물을 부을라치면 싱크대 하부장에서 지구 대신 싱크 스댕다라이를 떠받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아틀라스가 잠시 짜빠게띠의 상념에 쪼들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제1경추를 덜컥- 하고 한번 헙어버리고 그 바람에 싱크대 스댕 바닥이 뿌둑- 울렁인다는 것은, 따사로운 주방을 위한 수백 가지 상식을 가진 현명한 주부라면 오렌지  주스통에 보리차 담아 냉장고 문에 넣어두고 마시던 영애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바일 것이나 이 날 형벌을 받는 아틀라스는 스댕 싱크에 돌 같은 제철 무 두 개분의 무게를 지탱해야 할 것이다.


 -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마님?

 - 시작부터 시작하게.


 청결한 부엌에는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모를 아일랜드 식탁과 널찍한 4인 식탁이 있음에도 썰은 무 두통을 담을 다라이가 없기 때문에. 씽크스댕다라이 아틀라스는 요즘 귀한 천일염에 단단한 몸체의 수분이 빨려야 할 정육면체들을 지탱해야 한다.


-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 물이 얼마나 흥건해질 때까지가 적당한 절임이란 것일까?


  게다가 다라이가 두 개만 있다면 깍두기 하나 담겠다고 싱크대 청소를 박박 해야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큰 다라이를 두 개나 사놓자니 이곳이 후작의 저택이라면 백 년에 한 번 시선이 닿을까 싶은 고르곤 조각상조차 제 자리가 있겠지만 춘하추동이 극단적인 형태로 뽑혀 나가고 있는 이 도시에서 더 이상 세간살이를 들여놓은들 냉장고 위 던전에 처박혀 다음 이사 때나 아니 이건 뭐야 싶게 나와 다시 이사 갈 집의 어딘가 구석 던전에서 조용히 영생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어차피 망해가고 있더라도 더 보태지는 말아야지 하며 다시 박박 닦아 낼 수밖에.





양념은 뭘로


 밀가루 풀이라니. 깍두기 양념에 밀가루 풀이 들어가다니. 밀가루 풀은 도배장판 바를 때나 쓰던 것 아닌가. 다행히 밥솥에 있는 흰 밥을 갈아서도 해도 된다는 친절한 네이버 마담의 레시피에 가련한 한 사람의 소박한 감사를 간절한 마음으로 보냅니다. 복 받고 복 받을 지어다.


 맙소사. 밀가루 풀보다 간편하다고 해서 밥을 갈았더니 힘센 말 네 마리가 끄는 훌륭한 마차처럼 굴러가.. 지가 않았다. 밥 큰 두 스푼, 멸치액젓 네 스푼. 생강, 조청이 없으니 꿀로 해도 되겠지, 마늘.. 마늘은 많이 넣을수록 소울이 짙어지고야 말겠지, 그리고 사과.. 사과?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수학에서는 분류란 것을 배웁니다. 어떻게 분류해도 나란히 있기 어려운 친구들의 나열이지만 '갖은 김치 양념 속'이라는 너른 치마폭이라면 눈알 도도한 굴비부터 저 깊은 바닷속 어류 내장 찌끄래기까지도 모두 긍휼히 품어줌에 모자람이 없지요. 아니지. 극동아시아 작은 반쪽땅을 프리즘 삼아 무한히 펼쳐진 스팩트럼처럼 어느 대륙에 어느 땅덩어리에 떨어져도 김치로 먹을 수 있는 작물이란 작물은 다 절이고 무치고 비벼보는 끔찍한 식생태교란종 아니 교란족. 우리는 한민족이잖아요. 한민족은 김치 양념처럼 넓은 스팩트럼으로 많은 인종과 인성과 인생들을 포용하는 법을 김치 양념 속 만드는 방법 보다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21세기에 매일 깨닫는 아픔만큼이나 너그러운 마담의 레시피대로 만든 양념 상태는 참혹해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산산조각 소리치며 깨어진다.


무 하나 1500원인데.



보라. 저기에 우리 남편이 온다! 드파르지를 보라!


 밥알과 기타 등등과 사과를 같이 갈았더니 심하게 밥알이 살아있어 이걸 차마 무에 비빌 수가 없어 시름이 깊어지고야 말았다. 이따위로 씹다 뱉은 밥알같이 생긴 양념을 절인 무에 버무리면 누가 봐도 서울깍두기 해장국집에서 더럽게 처먹다 떠난 손님상에서 나온 짬그릇인 줄 알 것이다. 눈물이 고인다. 그냥 사 먹을 걸 하는 후회의 눈물만은 아니며 갈고 또 갈면 멀쩡한 양념이 될까 싶어 도깨비방망이로 계속 갈았더니 눈이 아프다. 내 눈.




환자분 보톡스 후 1주일은 깍두기 같은 딱딱한 음식 씹지 마세요.


지금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한 어떤 행동 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으로 훌륭한 행동을 한다. 이때까지 먹어온 깍두기, 지금 이 순간 입 안에서 씹히고 있는 깍두기, 그리고 앞으로 이가 허락해 줄 때까지 씹어먹을 수 있는 미래의 깍두기까지 포함하여 가장 맛있는 깍두기라고 말할 수 있으며 매번 먹을 때마다 새롭게 말할 것이다.



음 아직 덜 익었는데?

라는 말을 방금 만든 깍두기를 씹으면서 내뱉는 이의 머리통 속과 저 입을 움직이는 신경줄이 어떤 강도일지 따져 묻지 않고, 그저 가련한 목숨으로 여기며  이름 모를 우리 다정한 사이버 자매들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희망과 평안을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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