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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Jul 12. 2023

긴긴밤_(   )가 태어났다.

독서모임 #1

20230509. 발제자 ㅂㅅㅎ님.





짦은짧은 밤, 어색하다.

이건 짧디 짧은 밤이라고 쓸 수 있겠다.


또 깊은깊은 밤, 이것도 어색하다.

깊고 깊은 밤 정도가 매끄럽겠다.



긴긴밤.

긴긴밤이라는 단어는 왜 어색하지 않은가.


한 음절이라서 그런가.

센센 바람. 이상한데?


길고 긴 밤. 길고도 긴 밤. 길디 긴 밤이 아니라 비문처럼 들리는 긴긴밤.


수십 년 전 한 토크쇼에서 형용사가 두 번인 괴상한 이름의 샴푸 광고 찍었다며 경솔하게 말하던 맥 라이언에게 물어보고 싶다.

긴긴밤은 어떤가요. 어색한가요? 이것도 이상한가요.

정말 깜찍하고 귀엽고 통통 튀고 사랑스러웠던 그녀의 의견이 궁금하다.

형용사가 두 번 반복돼도 괜찮을 수 도 있지 않나요. 영어로 롱롱은 그냥 롱롱이면서.. 섹시 마일드라고 할 수도 있지 왜. SEXY MILD가 뭐 어때서 그랬나요.


어쨌거나


긴긴밤은 그냥 긴긴밤으로 슬렁 넘어간다. 걸리는 것 없이 어색하지 않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인디언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코끼리들 사이에서 이제 노든은 한 마리의 훌륭한 코뿔소가 되기 위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대자연, 우주 코스모스의 편견 없고 무심한 불행을 겪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우직하고 뭉툭하게 의인화된 동물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노든의 아내와 딸, 파라다이스 동물원과 앙가부, 치쿠와 윔보에게 엇박 한번 없는 공평한 불행이 성실하게 밀려왔다 쓸려 나가고 이제 살아남은 것이 행운인지 형벌일지 모를 두 동물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지구상에 단 한 마리 남은 흰바위 코뿔소 노든과 짝을 잃은 펭귄 치쿠, 그리고 알 하나. 이보다 더 가련하고 허약하고 위태로울 수 없는 작대기 두 개가 부들거리며 사람 인(人) 자를 그리고 있다. 아슬아슬하다. 곧 둘 다 엎어질 것 같지만 어떻게든 지탱이 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결국 조그만 펭귄 치쿠쪽이 먼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작대기가 된다. 이제 노든은 혼자서 긴긴밤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지탱할 각 없이 덩달아 쓰러지기엔 하나 남은 것이 있다. 윔보와 치쿠가 애지중지하던 알이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지켜야 할 약속이 남아있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저 알에서 뭐가 나올까.

 

펭귄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어딘가 결손이 있거나 장애를 가진 펭귄이 태어나거나 아니면 반전으로 펭귄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 태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앞 뒤 사정상 안 태어날 리는 없고 과연 저 알에서 뭐가 나올까.



오늘도 긴긴밤이 될 것이 분명한 밤하늘 아래 혼자 남은 노든은 알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조금씩 알에 금이 간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부리가 껍질을 깨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이 문장을 본 순간부터의 몰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엄청났다.


그 알에서 설마 '내'가 태어날 줄은 몰랐다.


알 속에서 부리로 깨었을 조그만 틈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과 바로 그다음 페이지에 가득 펼쳐진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을 보며 비로소 나는 태어났다.

앙가부, 노든 두 코뿔소와 치쿠와 윔보 두 펭귄이 나의 부모요, 그들이 거쳐온 시린 고난을 산도(産道)로 거친 내가 이제야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태어났기에, 너무나도 매끄럽게 '나'의 눈으로 진행되는 일인칭 서술이 시작되었고 이때까지 삼인칭이었던 앞부분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된 화자 '나'의 내러이션으로 탈바꿈했다. 깨진 알 넘어로 밤하늘과 노든의 모습이 보이며 '내가 태어났다' 라고 하는 순간부터 이 건조한 로드 무비는 정말로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이제 바다를 찾으러 긴긴밤을 걷고 또 걷는다.

당분간 혼자는 아니다.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인 노든이 있다.





바다를 찾은 펭귄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바다로 뛰어들며 어쩌면 나는.... 하고 바람을 말한다. 그 바람은 이 소설은 첫 도입부, 노든의 마지막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생략되어 쓰이지 않은 이야기 묵음으로 읽히고 나서야 끝이 난다.


서술의 시점이 달라지며 전반부와 거의 동일한 플롯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어디서 끝맺어야 할지 모를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지가 중요하지 않다.


나(펭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해석은 다양할 것이다. 긴긴밤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만큼 다양할 것이다. 긴긴밤이 그 자체로 인생이며 때론 인생의 터널 한 부분이다. 같은 단어인 인생은 모든 이에게 다 다르다. 인생의 사람 인(人)자는 모두 다 위태롭다. 누구라도 두 작대기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모두 끝내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작은 귄으로 다시 태어나 파도만한 절망과 사막같은 현실을 걷고 또 걸어 긴긴밤을 뚫고 악착같이 살아 자기만의 바다로 뛰어든다.

긴긴밤은 길고 길어도 영원하지는 않다.   


긴긴밤을 함께 보낼 다른 한 작대기가 있거나 또는 지금 곁에 없어도 긴긴밤을 함께 보냈던 기억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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