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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03. 2023

그 가족의 여행법

따로 또 같이 

온 가족이 집에서 함께 출발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싱가폴 공항 1터미널과 3터미널로 헤어졌다. 따로 하게 될 여행을 앞두고 차에서 여행 잘 하라는 덕담을 서로 나누며 혹시 외로우면 어쩌나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헤어진 후 곧바로 전화가 왔다. 며칠 후 유럽 내 이동하는 항공권을 찾을 수 없다고. 서둘러 노트북을 열어 여기저기 뒤져보았지만 나한테 있을 리 만무. 허둥지둥 하느라 살짝 내려앉던 외로움이 탈탈 털러나갔다. 그래, 역시 여행은 혼자지. 그나저나 항공권을 어쩌나.


비행기에서 앞좌석을 찜했더니 옆자리에 줄줄이 아기들이었다. 아기 요람에서 아기를 깨워 안은 다음 정수리에 뽀뽀하는 엄마를 보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아기가 생각나서. 외롭지 않다고 하하하 웃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왠 눈물. 눈물이 핑 돌게 만든 나의 아기는 여기저기 전화하고 뛰어다니며 메일과 예약번호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항공권도 다시 받아낼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그 정도면 잘 컸지. 출발 전에는 한달 동안 떨어져 있는다며 애틋하게 불쑥 불쑥 엄마를 껴안던 아기였다. 일찍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엄마가 없어도 알아서 더 잘 지낼 것이다. 조그맣던 아기가 언제 그만큼 컸는지. 


자꾸 아기아기 하니까 내 아기가 더 보고싶다. 내 아기도 지금 옆자리의 저 아기가 앉아 놀고 있는 기내 바닥에 누워 잤었지. 아주 오래 전, On the way to Rome 이었지. 그리고 지금 나 혼자 다시 on the way to Rome. 마침내 아이는 다 자라 아빠랑 단둘이 여행을 떠났고 나는 혼자 시칠리아에 간다. 아주 오래 전, 아이와 둘이 여행 왔다가 아이가 아파 돌아섰던 곳. 남편의 된장 찌개가 그립다는 핑계로 돌아서 버렸던 그 섬에 다시 간다.


그동안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고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겨우 그것, 어쩌면 너무 대단한 그것. 무심하게 지나는 세월 동안 이렇게 조금씩 여물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


집을 출발해 싱가폴과 독일을 거쳐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밤을 보내며 시칠리아행 아침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아이 손을 잡고 로마 공항에 내려서 본, 공항 조끼를 입고 있던 앳된 금발머리 청년이 생각난다. 십년도 훨씬 넘었는데 그 장면과 그 얼굴은 잊히지도 않는다. 그랬던 로마 공항에 다시 오니 설렌다. 시칠리아에 가면 더 설레겠지. 그나저나 서른 한 시간이 넘게 깨어 있는 중이다.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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