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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19. 2023

책방의 쓸모 in Johor Bahru


책방을 만들어 놓으니 번역 작업할 때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무거운 책도 놓고 다닐 수 있어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들을 수 있어서, 

내 몸에 맞고 편한 책상도 넓게 차지하며 일할 수 있어서 좋다. 


책방 문을 여는데 마침 손님이 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번역을 시작했다. 

책방 손님도 책장을 찬찬히 훑어보다 한 권 골라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커다란 창밖으로 가끔 하늘도 바라보면서. 

고요한 책방에 노트북 타닥거리는 소리와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지만 멀찍이 떨어져 각자의 책에 빠져있는 그 순간이 몹시 편안했다. 


그래, 이럴려고 책방 만들었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렇다고 왁자지껄도 싫어서.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책을 보며 충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각자의 책속 세상으로 나란히 빠져들기 위해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 조호바루에서.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삶을 아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화를 잠깐 나누었다. 


손님이 돌아간 후 다시 고요는 내 차지가 되었다. 


매일 더운 날씨인 건 매한가지이나, 책방의 온도가 어제보다 조금 더 높아진 듯 하다. 


누군가 책방에 남기고 간 체온, 누군가 내 책에 묻히고 간 지문 덕분에 

덩그러니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 


책방의 커다란 창밖으로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손님은 잘 돌아가셨으려나.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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