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바루 아리책방
갑자기 책방 손님이 늘었다.
인스타 광고만 주로 하다가 조호바루 지역 카페에 글을 한 번 올렸더니 효과가 그래도 없진 않구나.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편하게 둘러보시라고 말씀드린다.
편하게 책 보면 되는 거죠?
라고 미리 묻는 분들도 있다.
네, 그럼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새로운 손님을 적당히 보살핀 것 같으면 커피나 차를 드실지 묻는다. 대부분 마다하지 않고, 나는 오늘 처음 본 손님을 위해 룰루랄라 커피콩을 간다. 커피 가루를 여과지에 옮기고 맛있어져라 뜨거운 물을 부으며 손님과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간단한 질문들이다.
(여기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어디서 보고 오셨냐는 질문이기도 하고, 이곳 조호바루에 얼마나 사셨냐는 질문이기도 하고, (아이들 국제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시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딱 봐도 학부모지만 간혹 알쏭달쏭한 분들이 오시기도 하니까) 내가 던진 질문에 저마다의 답을 듣고, 또 손님들의 질문에 내가 답해주기도 하지만, 아이가 몇 살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까지 애써 더 묻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사실, 용감하게 책방에 놀러 온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이들이 내 책장 앞을 서성이다 무슨 책을 골라 읽는 지다.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손님들이 책을 골라 자리를 잡고 어색했던 대화도 잦아들어 고요해지면 나는 생각한다. 내게 필요한 건 딱 이 정도의 사회생활이었다는 것. 이 정도 깊이. 그러니까 거의 깊이가 없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인. 집 놔두고 괜히 카페에 가서 일하고 싶은 것과 비슷한 심리. 어차피 혼자 작업하면서 아무하고도 말을 나누지 않지만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옆 자리의 누군가와 묘하게 느끼는 얄팍한 동지의식. 책방에 와서 책을 읽는 손님들에게 나는 그런 마음을 느낀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생활을 했더니 사실 첫 손님이 왔을 때는 이 정도도 몹시 피곤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리고 그 후에 덧붙이는 몇 마디만으로도 하루의 에너지를 절반 이상 써버리는 느낌이었달까. 아, 책방을 꾸린다는 건 이렇게 피곤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면서.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나도 예외는 아니니 지금은 그보다는 낫다.
10월에는 책방에서 함께 책 읽는 모임들을 기획해 보았다. 물론 여기는 좁은 동네인 데다가 (책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없(는 것 같)으니까 전부 성사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도통 계획이라는 걸 모르는 P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이다. 인원이 모여 모임이 성사되면 좋겠지만 성사되지 않아도 나름대로 또 마음이 편하고 즐거울 것이다. 그렇다고 성사되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 역시 아니고. 어떻게 될지 두근두근 기다려 봐야지.
손님들은 30분을 머물다 가기도 하고 두 시간 이상 고요히 책을 읽다 가기도 한다.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 나는 와 주셔서 고맙다고 답한다. 그리고 빈 말이 아니고 진짜로 또 오시라며 손님을 배웅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안도의, 아니 뿌듯한? 어쩌면 설레었던 숨을 푸 하고 내쉰다.
참, 오늘 오셨던 한 손님이 골라든 책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