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만들어 놓으니 번역 작업할 때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무거운 책도 놓고 다닐 수 있어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들을 수 있어서,
내 몸에 맞고 편한 책상도 넓게 차지하며 일할 수 있어서 좋다.
책방 문을 여는데 마침 손님이 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번역을 시작했다.
책방 손님도 책장을 찬찬히 훑어보다 한 권 골라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커다란 창밖으로 가끔 하늘도 바라보면서.
고요한 책방에 노트북 타닥거리는 소리와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지만 멀찍이 떨어져 각자의 책에 빠져있는 그 순간이 몹시 편안했다.
그래, 이럴려고 책방 만들었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렇다고 왁자지껄도 싫어서.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책을 보며 충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각자의 책속 세상으로 나란히 빠져들기 위해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 조호바루에서.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삶을 아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화를 잠깐 나누었다.
손님이 돌아간 후 다시 고요는 내 차지가 되었다.
매일 더운 날씨인 건 매한가지이나, 책방의 온도가 어제보다 조금 더 높아진 듯 하다.
누군가 책방에 남기고 간 체온, 누군가 내 책에 묻히고 간 지문 덕분에
덩그러니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
책방의 커다란 창밖으로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손님은 잘 돌아가셨으려나.
또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