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를 하다가 넓은 운동장을 발견했다.
요 근래 그렇게 크고 행색이 제법 갖추어진 운동장을 본 적이 없던 터라, 반가움에 이끌려 들어갔다.
그 넓은 운동장 구석에 철봉이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조 잔디가 모자랐던 걸까. 모서리 남은 자리를 모래로 채우고, 그 위에 철봉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쇳덩이가 보이는 철봉이 더 익숙했기 때문에 새하얀 그것이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철봉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기둥들이 만들어 낸 공간을 문 삼아 통과하는 놀이를 할 뿐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남자 친구에 물었다.
"철봉의 묘미는 닭다리로 매달려서 누가 오래오래 버티냐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말을 뱉자마자 다 큰 어른이 어린이들의 부족한 동심을 안타까워하며 '나 때는 말이야'하는 행태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리고 저 철봉 문을 통과하는 어린이들보다 동심이 부족했던 시절이 떠올라 조금 부끄러워졌다.
열 살의 동갑내기였던 류지원과 나는 마주 보고 살았었다.
푸른 빌라 ‘다’ 동의 3층 베란다 창문에서 “류지원!”하고 부르면, 맞은편 ‘라’ 동의 3층 베란다에서 나보다 더 작은 아이가 참새처럼 걸어와 “왜?”하고 대답한다.
나는 실없이 킥킥 웃고 나서 “놀자!”하고 외친다.
“탁, 쾅, 다다다”
창문을 닫고, 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소리가 반대편 건물에서도 똑같이 들려온다. 나인 듯 하지만, 나와 아주 다르게 생긴 누군가에 의해.
'베란다 회동'
그건 카톡보다 빠르고, 전화보다 확실한, 그러나 은밀하지는 못한 약속이었다.
우리 둘은 10살이 되는 해에 같은 수학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물론 지원이는 수학을 잘했고, 나는 수학을 아주 못했지만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의 '베란다 회동'은 '철봉 회동'이 되었다.
규칙은 이렇다.
수학 학원을 가기 30분 전,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다. 그리고 철봉 밑에 서서 땅만 30분 동안 바라보다가 학원을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돈을 벌기도 하고, 다른 날은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회동은 넘실대는 시간을 운동장에서 흘려보내기로 한 우리가 철봉 밑에서 500원을 발견한 사건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누가 들을까 숨죽여 좋아했고, 우정에 금이라도 갈까 500원짜리를 반쪽 씩 잡고 그 현장을 빠르게 떠났다. 어른들의 수많은 가르침 속에서도 굳이 '주운 돈은 빨리 써야 한다'는 말을 골라 지키기로 했다.
우리는 어른보다는 어리석었지만, 어린아이 치고는 약삭빨랐다.
500원보다 더 큰 수확을 내보겠다고 그 돈을 모두 ‘뽑기’에 탕진하기로 마음먹고 말았다.
그 당시 초등학교 앞 슈퍼에서는 종이 뽑기가 유행이었다.
널찍한 판에 수많은 종이 쪼가리들이 스테이플러로 매달려 있고, 종이 안에는 소소한 상품들이 쓰여있는 어린이용 경품 추첨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용이라 해서 꿈과 희망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전 재산만큼의 ‘꽝’이 나올 수 있다는 잔인한 어른들의 세계를 맛보고 말았다.
그때부터 ‘철봉 회동’이 시작되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500원의 행운을 기다리기엔 성격이 급한 아이들이어서 그 운을 직접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철봉의 승부는 그 긴 쇳덩이에 거꾸로 매달려서 오래 버티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작은 주머니 속에서 동전들이 무기력하게 떨어지기 일쑤다. 우리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0살짜리 두 명의 계획치고는 논리적이고 세속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철봉 밑 동전을 주우며 뽑기의 행운을 기대했다.
그 철봉 밑을 가기 위해 수학 학원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뽑기를 해서 더 큰 수확이 나올 때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지만, 우리는 꼭 동전을 주우면 뽑기를 했다.
운으로 얻은 돈은 운으로 써야 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