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달리기 경주에서 나는 늘 3등이었다.
영광의 1위도, '졌지만 잘 싸운' 2위도 아닌, 애매한 순위이다.
경품으로 주는 공책도 늘 한 권이었다.
썩 잘하진 않았지만, 또 그다지 못하진 않았으니 적어도 한 권은 줄 수 있겠다는 선심의 의미이다.
난 그 3등이라는 타이틀이 좋진 않았지만, 딱히 싫지도 않았다.
그 애매함에 나조차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난 육상 선수나 경찰과 같이 달리기가 중요한 직업을 얻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따라서 달리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은 내 인생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23살 이후로 나는 달리는 법과 그 맛을 알아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 머리는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몸이 어디선가 주워듣고 온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기특한 일이었다.
동아리 체육대회에서 계주 선수를 뽑아야 했다.
다른 종목은 지원자로 꾸려졌지만, 계주는 달랐다.
계주는 늘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다른 걸 다 이겼어도, 계주에서 지면 최종 승부에서 졌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계주는 늘 마지막에 성대하게 치러진다.
관람자들은 어느 경기보다 경기장에 가까이 다가와 있고, 심지어 관람자들이 경기장 자체가 된다.
따라서 달리기는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 뽑혀야 했기에, 동아리 내에서 예선을 치렀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무작위로 조를 짜고, 한꺼번에 달려와 기록이 가장 빠른 사람들이 나가기로 했다.
뭘 또 귀찮게 예선까지 하냐며 터덜터덜 출발선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준비'라는 말은 마법과 같아서 들으면 무조건 그 말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어있다.
일부러 못 달리는 척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늘 3등이었으니까.
신호는 울렸고, 나는 3등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도착선에 다다랐을 때, 내 앞의 1등과 2등은 없었다.
내 앞을 이끌던 두 명의 말은 어디로 갔을까.
심판은 내 이름 뒤에 '1등'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망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계주 선수였다.
어째서 다들 예선에 열심히 뛰지 않은 것이냐고, 계주 우승은 꿈도 꾸지 말라고 떼를 쓰고 선포도 놓아봤지만 이미 난 출발선 위에 서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여자 1등이었으므로, 남자 1등과 함께 마지막 바퀴를 담당하게 되었다.
계주에서 '마지막 바퀴'의 의미는 '앞에서 앞구르기, 뒤구르기를 하며 망쳐놓아도 수습해야 한다'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다른 선수들이 내 옆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난 달리기를 잘하려면 몸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조차 몰랐다.
대충 떠오르는 동작들을 어설프게 따라했다.
조기 축구에서 늘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가 갑자기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간 상황이었다.
오바같지만, 적어도 내 기분은 그랬다.
응원을 받으며 강제로 내가 계주 선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쯤, 경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 팀의 한 선수가 초반부터 넘어졌다.
'아뿔싸'
무언의 압박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난 졸지에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차라리 내가 넘어졌어야 했다.
계주에선 안타까운 넘어짐보다 형편없는 달리기 실력이 더욱 죄악이기 때문이다.
심장의 속도는 달리기를 위한 BPM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바통이 나를 향해 달려올 때, 난 3등이었다.
그동안 내 마지막 달리기 기록이 3등이었던 것처럼, 그 순간에도 3등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달려보지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도 '왜 이렇게 빠르지?'라고 생각했다.
상체는 가벼웠고, 다리는 힘찼다.
발가락은 땅에서 튕겨나가느라 발꿈치가 땅에 닿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하자마자 내 앞의 2등을 제쳤고, 코너를 돌 땐 능숙한 육상 선수처럼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단숨에 1등을 제쳤다.
그 뒤로 우리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내 달리기 실력에 감탄 중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모두 나에게 왜 이렇게 빠르냐는 감탄 섞인 질문들을 해왔지만, 그 답은 아무도 몰랐으며 내가 가장 궁금했다.
머리가 잠을 자는 동안, 몸은 혹시 모를 달리기 경주를 위해 훈련을 해왔던 것일까.
머리는 3등이 부끄럽지 않았는데, 몸은 늘 부끄러워 복수(?)의 꿈을 키워왔던 것일까.
그 이후로 달리기를 할 일이 없어서 아직까지 내 몸이 달리기 방법을 알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변한 것은 하나 있다.
그 뒤로 종종 '달리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는 것이다.
보도블록 위에서 버스를 잡기 위한 효용적 달리기로는 성이 안찬다.
드넓은 운동장 위에서 숨을 고르고, 참았다가, 가파르게 뱉어내는 그 순간의 달리기가 하고 싶다.
해가 지던 여름날 그 시간, 만년 3등에서 벼락 1등으로 올라서던 그 순간.
다시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다.
기울어진 발레리나의 모습으로 단숨에 풍경들을 스쳐 지나가던 그 균형과 속도를 느끼고 싶다.
우리의 몸은 자세가 불안정할수록 반응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가끔 우리가 인생에서 위태위태하게 서 있을 때, 그건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몸은 가끔 놀라울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기억을 잘한다.
달리기를 못 한다고,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고, 스스로에게 맡겨보는 건 어떨까.
앞만 보고 걷느라 발견하지 못한 출발선을 나의 몸이 찾아냈을 수도 있다.
출발선이 없으면 또 어떠한가.
내가 숨을 고르고, 참고, 튕겨나갈 준비를 하는 그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나를 믿고, 불안정함에 힘을 실어줄수록 난 더 빠르게 달려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