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기
이 놈의 시라는 녀석은
어떻게 읽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집을 펼치면 튀어나오는 낯선 단어들
분명 국어공부에 소홀하진 않았을 텐데
속내를 알 길이 없는 문장들을 보면
이걸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이걸 읽으라고 쓴 건지 느끼라고 쓴 건지
느끼려면 어떻게 느껴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어쩌다 시심이 동한 나머지
어렴풋이 떠오르는 광경을 기억에서 겨우 끄집어내도
말로 시원하게 나타낼 방법을 모르니
시라는 것은 정말 쓸 수 있는 것이기는 할까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뭐라도 끄적이고는 싶은 모양이라서
오늘도 몇 자 끄적여 보기는 하지만
시 같은 건 정말 모르겠다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자꾸만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글을 쓰는 태도가 바뀐다는 점이다. 도대체 평소에는 진짜 사회의 자그마한 톱니바퀴 중 하나인 양 아등바등 하루를 겨우 버틸 뿐인데 왜 글을 쓸 때는 어느새 대작가가 되어서 혼자서 심각해지고, 막 이 글을 이상하게 쓰면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리 까고 저리 깔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날것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항상 정해진 길을 걸어야만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이 나 스스로를 한정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어느 정도의 형식은 있고, 그 형식을 지키면 그래도 기본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형식은 자유분방하게 펼쳐놓은 원재료를 정제하고 가공할 때에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표출할 기반도 없고, 경험도 없이 시작부터 형식을 가져다 놓으면 자꾸면 형식에 스스로를 옭매는 안타까운 모습만 연출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라는 형식에 스스로 얽매인 셈이다.
"나를 버려라."
몇 년 전, <이세계 아이돌 프로젝트>에서 기획자인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이 참가자들에게 멘토링을 하던 중에 했던 말이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나'라는 존재에 스스로를 옥죈다. 성격, 성정, 또는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들은 분명 내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지만, 필요한 순간 그 기준 때문에 나아가야 할 때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를 버리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각각에게 부여되고,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 있다. 아들로서의 나, 공무원으로서의 나, 선배로서의 나, 동료로서의 나, 오타쿠로서의 나 등등.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 쌓아왔던 그 역할들 중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모두 버린다는 것이며, 그 역할들을 맡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이득까지 모두 버린다는 것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버리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표현할 힘을 펼치지 못하고 포기하는 삶을 과연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좋든 싫든, '나'를 버려야 할 타이밍은 찾아온다. 번데기가 나비가 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서, 스스로를 번데기 안에 가두고 그대로 폐사할 것인지, 스스로의 등짝을 쪼개서 나비로 날갯짓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결정될 일이겠지. 그래서 일단은 스스로를 좀 더 표현해보려고 한다. 스스로 매달아 놓은 팔다리의 족쇄를 하나하나 끊어보려고 한다.
위 시는 그런 의미에서, 생각나는 대로 써본 것이다. 나는 정말,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쓸 수 있는 방법대로 쓸 것이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