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를 통해서 오디오북으로 듣게 된 첫 번째 책이다. 출퇴근 시간에 갤럭시탭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행위로 독서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행한 결과 정말 오랜만에 책을 탐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게 책을 추천해주어 오랜만에 과학 저서를, 정확히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에세이를 접하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1
이 책은 어류학자이자 초대 스탠퍼드 대학 학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행적을 회고록을 통해 되짚으며 그와 동시에 저자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타에 대한 평전이라 볼 수 있다.
인생의 의미로 삼고 있던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했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떻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는가? 그 동력은 무엇이며 자신 또한 그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데이비드의 삶을 집요하게 분석한다.
자연을 사랑하며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류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어린 시절과
루이 아가시의 사상을 전수받으며
자신이 하는 일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세상의 모든 물고기에 대한 분류체계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던 청년기
몇 번의 좌절스러운 경험들,
사고들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가려고 애썼던 중년기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힘과 명성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진화론에 심취하다
우생학이라는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되는
장년기에까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명의 과학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들으며 일종의 위인 서사적인 전개를 기대했던 나는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이 남자가 갖고 있는 '사명'에 대한 집착과 아집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의문점들이 모여 그의 범죄 행위와 나치즘에 버금가는 우생적 논리, 끝없는 자기 합리화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젊은 과학자의 열정과 끈기에 경탄했던 나의 감정의 깊은 곳에서 불편함 정확히는 혐오감이 차올랐다.
2
이는 저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어느 순간 그의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했고 그의 평전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의 구닥다리 같은 삶에 빛을 쪼여줄 마스터키라는 건 없다. 이 세상은 우리를 중심에 두고 돌아가고 있지 않다.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는 '나는 이 세상의 핵심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발전해왔다.
우리의 나라는 지구라는 덩어리의 한 지점에 불과했으며, 지구 또한 태양이라는 별을 하나에 두고 있는 8개의 행성 중 하나이고, 태양은 우리 은하에 속한 무수한 항성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은하의 중심부도 아닌 외측부 팔 어딘가에 박혀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진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우월성의 요소가 유전자에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못했다. 인류의 가치를 더 끌어올리겠다는 그의 마음의 시작은 분명 '선'이었으나 그 수단으로 택한 부적격자들의 선발과 그들에 대한 불임 수술 지지 선언 등은 현대적 가치로 볼 때에는 '악'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 속의 인물들이 나중에 커서 다시 찾아보면 모든 면에서 완벽하면서 도덕적이고 인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또한 그렇다. 그가 일구어 놓은 분류학의 정수는 분명 현대 과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분류학에 위계를 부여하여 하등함과 고등함을 인간 임의로 설정하려 한 것은 자신의 우월함을 당연시함에서 시작된 오만함이다.
오만함.
이는 과학자들에게는 어쩌면 필요시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비밀을 파헤치고 그 정체를 밝혀내는 미지의 영역 최전선의 탐험가들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가 하는 행위는 이 세상에 전혀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겸허함 혹은 공허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 오만함이 다른 존재를 깎아내리고, 옆의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피해를 주는 잣대가 되는 것은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다. 진리를 밝혀내는 신성한 임무가 그 본질을 잃은 사례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다.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도 해결되지 못할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3
명왕성이라고 불렸던, 한 때에는 태양계의 아홉 번째 자손이라 일컬어지던 행성이 생각났다. 인간들이 이 천체를 행성의 분류에 넣건, 넣지 않건 간에 이 대상에 작용하는 물리적인 법칙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명왕성 위에 사는 생명체가 있다면 어쩌면 평생 동안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이름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명명하고, 분류하고, 인간에게 익숙하면서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시도는 조금 더 먼발치에서 본다면 정말 의미 없는 일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분류학자들이 만들어온 이 시스템은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렇게까지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시절 물리학 실험을 할 때에 보고서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말이 무엇일까. 공기의 저항을 무시한다. 마찰력의 영향을 무시한다.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상상치도 못할 수많은 변수들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 단순화하려고 했고 그곳에서부터 분류학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곳에서도 중용이 나오나 보다. 체계를 만들어가지만, 그 시스템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 것.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지 않고 의심을 하는 것. 과학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며 필요한 방법이리라. 우리의 생각은 모두가 존중받아 마땅하며,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에테르와 같은 물질은 없지만, 스스로의 삶이 파멸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일심. 결국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가장 원론적이면서도 결국에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 말을, 책장을 덮으며 나는 떠올렸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이 책에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온다는 것. 자신만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행해야 하며(저자와 데이비드가 결국 행동을 했듯), 자신이 행복이라 생각한 것이 정말로 맞는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 뭐, 행복을 진리, 이데아, 사상 어떤 걸로 갖다 붙여도 무방할 거 같긴 하다.
직장생활에 치여 돌아보지 못했던 내 삶의 자세를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덧.
중반부부터는 조금 많이 힘들었던 책이다. 특히 우생학적 사상에 물든 미국 정부에 의해서 벌어졌던 참극의 일면이 보이는 장면은 정말 빠르게 책장을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오를 덮어버리는 사람들은 같은 일을 겪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