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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짓는 사람 Aug 10. 2024

책을 전량 폐기 후 내린 결론

책을 더 진심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 


처음이었다. 책을 인쇄하고 전량 폐기를 한 경험이.

당연히 직원으로 있을 때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14년 동안 전량 폐기 없이, 큰 실수 없이 책을 잘 만들어냈다. 

굳이 실수를 고백하자면, 정말 입사하고 한 달도 안 된 신입 시절에 

ISBN 번호 제대로 확인 못하고 인쇄 내보내서, 스티커 붙이러 창고에 간 기억 빼고는 없다.

그것도 내가 사수였다면 최종 확인을 절대 입사 한달짜리 신입에게 맡기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이번 마감한 책의 인쇄물을 출력한 가제본을 받았는데, 오류가 있었다. 

이것도 변명을 하자면,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것도 버거운데, 작가를 하겠다고 개인 책을 준비하고,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외주 업무까지 해내는 내 일상이 버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달에 한 권을 반드시 출간한다는 회사 목표를 맞추려니 직원이자 대표이자 작가이자 프리랜서인 

나는 몸이 한 개라 참 버겁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 비겁한 변명이다) 


마감한 책의 오류는 정말 세밀하게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치명적이었고, 이대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제본을 하기 전에, 인쇄소에 전화해 인쇄물을 전량 폐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인쇄비, 종이값이 두 배로 들고, 나는 제작비를 더 쓴 셈이었다. 

일정도 뒤로 밀려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세상에 내보내서 밤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 받고, 부끄럽기는 싫었다. 

그래서 일시적 손해를 보는 쪽을 선택했다. (이 일은 손해가 아니라, 일시적 손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마이너스지만 이렇게 공들여서 만든 책이 결국 나중에 나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 한 권을 마감할 때마다, 내 수명의 아주 작은 일부를 쓰는 기분이 든다. 

이건 편집자로 살면서 14년 동안 느끼는 증상이다. 마감을 치면 꼭 몸이 아프다. 

내가 직원으로 있을 때도 그랬고, 외주일을 할 때도 그랬다. 

책 하나를 만들 때마다 나는 어쩌면 사력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즐겁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손에 들리고 그의 삶이 바뀌는 일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단순히 즐거운 유희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이 바뀌는 성서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책 만드는 일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책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간 만든 책을 누적으로 하면 약 20만 명쯤 되는 독자들을 만났지만, 사실 한 권으로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낸 일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목표는 베스트셀러, 메가 셀러를 만드는 것이다. 14년 차에 고백할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고 건강히 이루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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