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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짓는 사람 Jul 14. 2017

흐르는 시간 속에, 지금, 더블러너 Y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여자들의 ‘좋아요’를 많이 받은 영상을 보았다. SK-2에서 만든 <나이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라는 영상이었다. 올해 딱 서른인 87년생 한국, 중국, 일본 여자들이 30대 여자로서 사회에서 어떤 시선들을 받고 있는지를 다룬 영상에 많은 여자들이 공감하고, 위로 받았다고 댓글을 달았다.
동양권의 사회에서 여자 나이 30세는 유통기한이 정해진 나이처럼 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가혹한 나이다. 30대가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하고, 일도 잘해야 하며, 여자의 아름다움은 20대에 소멸하는 것처럼 의식되는 사회 속에서, 여자들의 마음은 불편하고 시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지 않은 3, 40대 여자를 향한 시선은 서양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여기, 우리나라에서 불편한 시선을 받다가 낯선 땅에서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Y가 있다. 올 봄에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그녀를 만났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 된 나라, 최근 JTBC 방송 <비긴어게인>에서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운 나라, 그리고 그 중심 도시 더블린. 더브러너이자 30대가 된 Y와의 개인적이고도 진솔한 대화는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즐거웠다.

 

 (더블린 리피강 위에서 특유의 편안한 표정을 짓는 Y)

 
J: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Y: 홍보광고를 전공하고 졸업 후, 홍보 에이전시에서 일했어요. 처음엔 인턴으로 시작했는데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인턴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해서 처음부터 일을 많이 한 편이었어요. 광고 에이전시는 제안 PT를 만들어서, 경쟁 PT를 따야 매출이 생기기 때문에 치열했죠. 지식도 많이 필요하지만, 정말 발로 뛰고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 게 많은 일이었어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팀이다 보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했어요. 기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우리에게 돈을 주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었죠. 그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 불만 등을 수렴해 모든 것을 아울러서 매니징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또 홍보라는 것이 신문이나 방송에 기사 하나 싣는 것이 결과물이고 성과라서 그것이 이뤄지기까지, 기자가 원하는 기사거리와 회사의 관점을 조율하는 등 노력이 필요해요. 기획하고, 실행하고, 클라이언트에 보고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하던 모든 일들이 처음에 되게 힘들었지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J: 두 번째 회사에서는 어땠어요?
Y: 다음에 이직한 회사도 홍보 에이전시였는데, 똑같은 대행사였지만 홍보하는 대상이 달랐어요. 이 전 회사는 소비재(브랜드나 상품) 홍보였는데, 다음 회사는 정책 홍보였어요. 정부(병무청, 여성가족부 등에서)가 의뢰하면 그걸 홍보하는 일을 했죠. 대표적인 것이 금연 캠페인 같은 거예요. 똑같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았지만, 알려야 하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거기서 3년 동안 일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직을 한 회사가 최근에 다닌 회사예요. 거기서는 홍보팀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1인 홍보 담당자로서 전체적인 회사의 홍보를 위해 실무를 다 했어요. 교육입시 회사이다 보니 입시 컨설팅/설명회 아니면, 원수 접수 대행 등을 다뤘어요. 그 자료를 가지고 홍보 자료를 만들고,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노출했어요. 회사의 브랜드를 알리고, 실제로 책(교재) 같은 경우는 소비재 홍보처럼 브랜드 홍보를 하기도 했죠.
단순한 홍보 담당자로서 일을 하면 한계가 있고, 입시를 알아야 하는 자리였어요. 기자들이 당장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답을 바로 해야 하기 때문에, 입시 전문가가 있어도 기자들한테 전달하는 사항에 대해 중간 전달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전할 수가 없죠.

J: 그렇게 애써서 다닌 회사를 그만둘 만큼 힘들었던 게 뭐였나요?
Y: 대학입시로 유명한 회사이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노출하면 큰일이었어요. 대학입시 전문 회사 이미지, 신뢰가 깨지면 큰일이었죠.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면서 예민해졌고, 숫자 같은 일에 민감해야 해서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이 일을 하며 분명 성장한 부분이 있지만, 반대로 일이 재미있지 않았어요. 학부모나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기자들 만나서 만든 자료를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보람이 없었어요. 상사, 사장님, 입시 전문가들, 기자들 사이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애쓴다고 애썼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를 느꼈죠. ‘내가 만들어 낸 정보가 아이들에게 정말 딱 맞는 정보일까? 가치가 있는 건가?’ 싶은 고민이 들었어요.
또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나 입시 제도가 돈 많은 사람들을 우선으로 되어 있어요. 입시 정보를 주고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한 시간에 40만 원까지 되는 것도 있어요. 그런 것을 편히 들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없어서 지방에서 단순한 팜플릿을 달라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며,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교육뿐 아니라 이렇게 입시 정보에서도 격차가 심한 것을 직접 현장에서 보면서 좀 회의를 느꼈어요.
더 이상 아니라는 판단이 섰을 때, 회사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어요. 조직 생활을 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고요. 돈을 좀 덜 벌어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고,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또 소신껏 의견을 내면 받아들여지는 곳이 아니라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교육 회사들이 좀 보수적인 면이 있거든요. 수직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부분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후임자를 고르고 인수인계하고 나오게 되는 과정에서도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J: 어떤 고민이었나요?
Y: 안정적인 직장을 떨치고 나온다는 부담감이요. 엄마가 이 직장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여자가 다니기에 안정적인 회사였고, 월급도 안정적이었으니까요. 엄마는 제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기를 바라셨죠.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엄마, 내가 너무 기쁘지가 않아. 지하철을 똑같은 시간을 타고 똑같은 시간에 집에 왔을 때, 외로움, 허탈감, 무력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들고,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했죠.
저는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혼자 살았기 때문에 평소에 부모님께 힘든 내색을 잘 안했어요. 걱정하실까봐 일부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엄마도 그걸 아시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했을 때 속상해하셨죠. 엄마만 허락해주면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영화 <원스>에서 여자 주인공이 꽃을 사던 곳, 그라프튼 거리)


J: 그 회사가 힘들었던 거면 다른 회사로 다시 이직할 수도 있지 않았나요?
Y: 이미 이직을 한 경험이 있었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가진 스타트업 회사에서는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알아보긴 했는데, 마땅한 회사와 포지션을 찾기 어려워서 포기했어요. 그런데 회사의 문제였다기보다 전반적으로 제 마음에 힘이 부쳤던 것 같아요. 결정을 스스로 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기를 정해야 한다면, 굳이 일 년 더 일해서 퇴직금 더 받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아일랜드행을 결정하고 나서 맘이 편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너무 외로웠거든요. 오래 혼자 살다보니 많이 지쳐 있었어요. 혼자 불 꺼진 방에 들어갈 때, 기분... 제 친구들은 많이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는데, 제 삶을 돌아보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J: 우리 나이대가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주변에 모두 결혼해 같이 놀 친구가 없어지고,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지는, 첫 번째 시기인 것 같아요.
Y: 맞아요. 상대적으로 혼자라서 자유롭고 좋은 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상대적인 거잖아요. 비교 대상이 내 친한 친구들이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소개팅을 나가도 맘에 드는 사람도 없고, 이런 마음이 계속 드니까 더 지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단순히 누군가가 없어서라기보다 오랜 서울 생활과 회사로 인해 지쳐있는데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어요. 한국에 있으면 여러 사람을 의식해서 제 인생을 돌아보기 힘들 것 같았어요. 저를 제한하는 환경으로부터 '분리'해보고자 먼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J: 소개팅은 자주 했어요?
Y: 전 남자친구랑 3년 전에 헤어졌는데, 그동안 소개팅을 자주 하진 않아도 3, 4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했어요. 3번 이상 만난 사람들도 많았는데, 결국엔 잘 안 됐어요.
N과 연애 얘기를 할 때도, 3년 이상 만난 남자들만 카운팅해서 말해요. (N은 지금 더블린에서 만나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J: 세계 많은 나라들 중 아일랜드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Y: 아일랜드는 영화 <원스>로 접했던 나라였지만, 그 전까지 관심도 없었고, 잘 몰랐어요. 영국이랑 헷갈리기도 하고. 사실 2015년 2월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파리와 사랑에 빠졌었기 때문에 프랑스를 가려고 했어요. 파리에서 불어를 배우며 살고 싶어서 예산을 뽑았는데 택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1년만 더 참고, 돈을 벌어서 가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로 가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J: 그게 아일랜드였나요? 
Y: 네. 생각해보니 불어를 배우면, 아예 모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영어는 아니니까 해볼 만하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외국에서 여행을 하고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영어가 더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든거죠. 그래서 유럽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봤어요. 찾으면, 딱 3군데가 나와요.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몰타.
 

인생은 가끔, 갑자기 부는 바람에 달라지기도 한다

(아일랜드 골웨이 모허의 절벽 위)

 
J: 몰타요?
Y: 네, 이탈리아 밑에 코딱지만한 나라가 있는데 여기서 영어를 써요. 사진을 찾아봤는데, 날씨 좋고 바다가 예쁘고, 휴양지라 공부할 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영어는커녕 맨날 놀 것 같아서 예산이 많이 드는 영국보다 아일랜드를 확정하게 되었어요.
 
J: 북미 쪽은 생각 안 해봤어요? 캐나다 좋은데..
Y: 안 그래도 J가 추천했던 캐나다를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유럽을 놓칠 수 없었어요. 유럽으로 결정하고 나서 알아보니까 아일랜드에 어학원도 많고, 유럽이라 여행가기도 좋고 해서 확정하게 되었죠. 학원을 알아보고, 숙소를 알아봤어요. 요새는 아일랜드에도 워홀도 많이 와서 인터넷에 정보도 많아요. 마침 그때, 영화 <싱 스트리트>가 개봉했어요.(2016년 5월) 그걸 보고 아일랜드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된 거죠. <싱 스트리트>가 되게 뽐뿌질(?) 하게 만드는 영화예요. 꿈이나 사랑에 대해서.
 
J: 저도 뽐뿌질 당한 영화가 있어요.
Y: 뭔데요?
 
J: <겨울 왕국>이요. <겨울 왕국>에서 엘사가 얼음을 만드는 능력 때문에 집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있잖아요. 집을 떠나 혼자만의 왕국에서 ‘Let it go.’ 하며 사는 장면을 보고, 독립을 결정했었어요. 딱, 나가 살라는 영화 아니에요?
Y: 겨울 왕국에서 그런 영감을 얻다니 재미있네요.(웃음)
 
J: 어쨌든 <싱 스트리스>를 보고, 아일랜드 행으로 마음을 굳히고, 온 거네요.
Y: 네, 마지막 노래가 ‘Go now’잖아요. ‘지금 안 가면 안 된다. 지금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물론 제가 아일랜드를 가기로 80% 마음먹고 영화를 봤지만, 그래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말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싱 스트리스>를 보고 100%로 결정하게 된 거죠.
 
J: 직접적으로 볼 순 없었겠지만, 교육이 관심 분야니까 좀 유의해서 봤을 것 같은데요. 아일랜드의 교육 환경 제도는 어떤 것 같아요?
Y: 아일랜드가 ‘자율학기제’라는 것을 먼저 시행한 나라 중에 하나예요. 한국에서도 자율학기제를 벤치마킹 하려고 아일랜드로 취재로 많이 왔었어요. 기사도 많이 났고. 우리나라야 이제 시작하니까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여기는 잘 운영되고 있대요. 자율학기제로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자기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시험이나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거죠.
 
J: 원래 아일랜드가 시험이나 입시에 중심을 두는 나라가 아니지 않나요?
Y: 아니에요. 기사를 찾아보면, 여기도 영국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나라고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열의가 높았대요. 그런데 이게 과열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겼고, 그래서 대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율학기제가 생긴 거죠,
그래서 직업에 대한 귀천도 없고 어릴 때부터 직업에 대한 교육, 특히 농업이나 공업에 대한 것을 교육을 일찍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J: 우리나라는 오직 과목에 충실한 수업 위주로 되어 있잖아요. 그게 획일적인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 건 아닐까 싶어요. 획일적인 교과과목만 배운 저로서는 자율학기제를 찬성해요. 단순히 그렇게만 치부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가 살아온 교육환경에서는 그래요. 이제 자율학기제 등이 시행되고, 교육환경도 변하면서 시대의 흐름도 학벌이 아닌 자신의 능력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입시에 대한 갈등도 사라질 것 같고 말이죠.
Y: 네, 독일은 기술직 사람들이 높은 대우를 받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일하다가 필요하면 대학에 가는데, 우리나라는 일단 무조건 대학을 가서 거기서 전공이 맞지 않으면 방황하고, 무조건 대학부터 생각하잖아요. 여러모로 낭비라고 생각해요.
 
J: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냥 무조건 대학에 들어가서 그 뒤에 생각해보자 하는 사람과는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 같아요. 물론 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 때 전공이 맞지 않아 인생을 낭비하듯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Y: 그러니까요. 그리고 전공이 인기 전공, 비인기 전공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어쨌든 입시가 시작되면서 사회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J: 그렇게 치열하게 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대기업을 가지 못하면 낙오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든 제도의 문제도 있고, 사회적인 시선도 있고, 정말 한국 사회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네요.
Y: 해외에 나와 살면, 그게 더 보여요. 아일랜드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고, 제대로 된 산업 기반도 없는 나라예요. 최근에 세금 정책을 낮춰서 유명 IT 기업의 본사를 옮겨오게 했지만, 이건 아일랜드의 제반 산업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냥 자족하며 살아요. 우리나라처럼 열등감에 빠져 살 거나 성공해서 엄청난 부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슬프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사실들이 밖에 나와 살다보니 더 잘 보이네요.
 
J: 그럼 앞으로 아일랜드에 정착해서 살 건가요?
Y: 솔직히 말하면, 여기 와서 정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한 4개월쯤 지났을 때, 겨울이라 날씨도 좋지 않고, 몸도 지쳐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쯤 교회에서 한 분이 대학원을 추천해주셨죠. 대학원을 진학하면 일 년 안에 끝나고, 졸업하면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2년 비자가 나와서 총 3년을 여기서 지낼 수 있다고 했어요. 비자를 발급받지 않는 건 저한테 큰 메리트였어요.
이탈리아인 남자친구는 EU이기 때문에 여권도 없이 아일랜드에 들어오고, 취업도 가능해요. 저는 Non-EU기 때문에 학비도 두 배이고 비자를 계속 연장해야 해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제가 아일랜드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예요.
 
J: 그래서 대학원을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거군요.
Y: 네, 대학원 진학을 구체적으로 상담 받고, 아이엘츠를 준비했어요. 보통 대학원은 9만 점에 6.5점 이상이면 합격이에요. PL이나 저널리즘이 중요한 대학은 7.0점 이상이 나와야 하고요. (아이엘츠 수업은 학원에서 Advance 레벨 이상이여야 들을 수 있다)
더블린에도 대학이 많고, 좋은 대학은 점수가 높아요. 상담해주셨던 분이 점수에 따라 조금 낮은 대학원을 나와서 취업하는 걸로 해보자고 조언해주셨어요. 정착을 하고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저한테는 어떤 대학이든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이제 다음 주에 시험 발표가 나요. 5월에 시험 점수가 발표 나고 대학을 등록하고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에요.
 

(지금은 Y는 더블린에 있는 한 대학원에 합격해, 가을부터 학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은 더블린 어느 대학교 안)
 

J: 해외의 한인 커뮤니티는 주로 한인 교회를 통해 이뤄지는 것 같아요. Y는 한인 교회에 나가죠? 교회에는 사람이 많아요?
Y: 한 100여 명 돼요. 그런데 80%가 유학생이에요. 대부분 학교나 어학연수가 끝나면 가는 손님들이죠. 교회에서 인생의 선배 같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낯선 곳이라 모든 게 어려울 때, 이모저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좋은 후배들도 만났고요.
 
J: 여기서 살 게 되면 언어 문제가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Y: 일단 여기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도 간단한 영어는 가능하니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취업을 하면 전문적으로 영어로 해야 하니까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해요. 앞으로 대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려울 것 같아요. 열심히 해야죠, 뭐.
 
J: 다 잘 될 거에요.
Y: 지금 상황들은 제가 올해 1월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그런데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어요. 남자친구가 생기고,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를 하고, 이제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모든 상황이 신기하긴 해요.
 
J: 환경을 바꿔 살면서 변화된 모든 일 중에 남자친구도 있네요. 그럼 우리 이제 남자친구 얘기를 해볼까요.(웃음) 어떻게 만났어요?
Y: 남자친구랑은 너무 자연스럽게 만나서 딱히 계기가 없어요. 한국에 있으면 최소한 결혼, 사회적인 틀 안에서의 여러 가지 잣대로 재고 만났을 수 있지만, 여기서 이 친구와는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어요. 이 친구는 이탈리아인이고 저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룰을 적용할 수 없고, 반대로 이탈리아인이라고 해서 저에게 이탈리안인의 룰을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열려 있어요.
서로가 존중해주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 다투게 되면 언쟁이 아니라, 토론을 하게 돼요. 서로 생각이 다르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로 접근하는 거죠. 문화,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화를 내기보다 먼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J: 외국인과 사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를 생각하면 싸울 일 없이, 이렇게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네요. 그러면 사이가 나빠질 일이 없을 텐데...
Y: 정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잖아요. 서로가 틀리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가지면 관계가 깨져 버리니까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해요.
사실 N은 어학원에서 만난 같은 클래스 친구였어요. 솔직히 N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관계가 발전했을 까 싶기도 해요. 이탈리안 남자라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바로 예스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요.
 
J: 그럼 언제 예스를 했나요?
Y: 남친이 만나보자고 했을 때는 ‘내가 너한테 관심은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스페셜한’ 관계가 되는 것에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요. 우리는 ‘저스트’ 프렌드였으니까요. ‘예스’를 안 한 상태에서 그냥 같이 친구로 한동안 지냈어요. 그러다 예스해서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 건 이제 두 달 정도 되었죠.
 
J: 외국인과 연애에 있어서 어떤 면이 중요할까요?
Y: 서로가 형식을 차리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보고, 편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요. 그리고 솔직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내다가 서운한 것 있으면 서로 다 얘기를 해요. 서운한 것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하고. 사실 이건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마찬가지지만, 저는 한국에서 그러지 못했어요. 하지만 N과 만나면서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오해도 풀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인 것 같아요.
오히려 오해나 문제들은 입 밖으로 내뱉으면 큰 문제들이 아닌데, 얘기를 터놓고 하지 않으면 그걸 키우는 것이 되어 버리는 거죠. 처음에 오해가 작은 덩어리였을 때 시작해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회피하는 게 쉬운 사람인데, 지금 남친과 지내며 변한 것 같네요.
국제 연애에 대한 편견도 없어졌죠.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대화가 잘 통하고, 문화적 코드가 안 맞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J: 한국에 있을 때 혼자 방에 들어가면 외롭다고 했는데 이제, 외로움은 없어졌겠어요.
Y: 외로움이 달라진 거죠. 가족들이 보고 싶은 외로움으로. 외로움이 향수병으로 바뀌었어요.
남친이 근본적인 외로움을 채워줄 수는 없죠. 남친 앞에서도 한국이 그립다고, 당장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면, 남친이 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이런 건 그냥 안고 가는 거죠.
 
J: 남자친구와 결혼 생각 있어요?
Y: 남친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기 인생의 도전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결혼 생각이 지금은 없어요. 저도 결혼은 이른 것 같아요. 지금은 연애에만 집중해 있는 상태예요. 지금 학업을 할 수 있는 게, 한국에서 벌어온 돈을 다 끌어다가 쓰고 있는 거예요. 만약 결혼을 하려면 여기서 취업을 하고 다시 돈을 모아야겠죠. 경제적인 안정이 생기면, 결혼과 상관없이 여기에 정착할 수 있겠죠.
 
J: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Y: 많은 친구들이 언제 한국에 들어오냐고 물어봐요. 원래 여기서 1년만 있다가 돌아가는 게 계획이었으니까요. 친구들한테 지금의 계획을 말하면 다들 놀라요. "거기 진짜 좋은가보다. 너 진짜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솔직히, 이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멋진 거 아닌데.

J: 왜냐면, 우리 삶이 정해져 있잖아요. 졸업, 취업, 결혼. 아이러니하게도 이 틀 안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면서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부럽고 멋져 보이고 그러는 거 같아요.
Y: 네, 하지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제가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아일랜드 생활을 올리는데, 정말 저처럼 한 번 살아보고 싶은데 결혼해서 아기가 있는 친구들, 언니들 같은 경우는 제 블로그를 보면서 대신 만족을 하고 있대요. 재미있게 보고 갔으면 좋겠어요.
또, 마음에 미련이 남는 친구들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지금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이런 삶도 살 수 있구나, 멋진 삶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삶 중에 이런 삶을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고, 제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나중에 50대가 되어, 여기를 와도 좋지만 그보다 젊은 시절에 여기서 돌아다니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것만큼 쉽지 않을 테니까요.
저하고 친한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와 했던 말이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질 수도 있는데,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해보자"였어요. 너무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않으면 좋을 거 같아요.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니까요.

(버스킹을 위해 기타를 들고 더블린 거리를 걷고 있는 윤도현. 출처: JTBC <비긴어게인> 홈페이지)


인터뷰 날짜 : 2017. 4. 29
장소 : 아일랜드 더블린 어느 노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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