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시 Pula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엉킨 이어폰은 풀려고 악을 쓸 때 더욱더 풀기 힘들어진다. 서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 풀던 이어폰이지만, 여행에서 엉킨 이어폰을 풀 때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설렘을 가득 안고 풀라행 버스에 몸을 싣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김동률의 이 흘러나온다. 흥겨운 멜로디, 상황에 맞는 가사를 들으니 길다면 길고 지루하다면 지루한 4시간의 이동이 그나마 빨리 지나간다.
풀라는 이스트리아 주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관광지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도시다. 나도 사실 이곳에 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여행 전 자료 조사 중에 풀라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버스가 있다 기에, 그래도 ‘유럽까지 왔는데 베네치아는 가봐야지’라는 생각에 풀라를 루트에 넣었다.
풀라는 옛 로마 제국이 지배했던 곳으로, 도시 곳곳에 로마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마치 로마에나 있을 법한 풀라 아레나이다. 로마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로마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풀라의 상징이라는 풀라 아레나는 원형 경기장으로, 현재도 공연에 사용될 정도로 보존이 잘 돼있었다. 풀라 아레나를 찾으러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가 주신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 가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커다란 원형 경기장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녀도 별로 보이지 않던 관광객들이 꽤나 많이 몰려있었다. 원형 경기장은 로마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크로아티아에도 있어서 신기했다.
Hvala!
저녁을 먹으러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가 추천한 식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시내 산책을 나왔다. 옛 로마 제국답게 걷다 보면 주변에 유적들이 꽤나 자주 보인다. 그래도 기념품은 사야지 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니 가게 주인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 5분 정도 이야기를 하고 기념품을 골라 계산을 하고 마지막으로 가게 주인에게 크로아티아어로 고마워가 뭔지 물었다. Hvala!
거리를 다니다 발견한 한 가지 재미있던 것은 아이들이 유적지를 골대 삼아 축구를 하는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석양을 등지고 축구를 하는 게 조금은 부러웠다. 어른들은 근처 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는 그런 모습이 어쩌면 내가 꿈꾸던 생활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