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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석훈 Jul 31. 2016

하늘의 눈물이 고인 호수, 플리트비체

요정의 숲, 플리트비체

새벽 6시, 눈을 떴다. 버스는 7시,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 라박을 떠날 채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다시 한 번 버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숙소 프런트로 가서 직원에게 물어봤다. 7시가 맞았다. 6시 50분부터 버스 정류장에서 라빈행 버스를 기다렸다. 시간은 흐르고 7시 5분, 10분, 15분이 돼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시간표를 보니 다음 버스는 9시. 그 버스를 타면 오늘 플리트비체에 너무 늦게 도착해 구경을 못한다. 그때, 아까 봤던 숙소 직원이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멈춘다. "혹시 버스 안 왔어?"라고 물으며 나보고 타라고 한다. 차를 얻어 타고 가는 15분의 짧은 시간 동안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줄 모른다. 그녀는 나를 라빈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라박을 떠나, 라빈과 나중에 다시 들릴 자다르를 거쳐, 거의 10시간 만에 플리트비체에 도착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한 오늘 하루가 플리트비체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어 있었다. 공원 폐장은 7시.  2시간 안에 E코스를 걷는 데에 도전해보려고 2일치 입장권을 구입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나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은 다 나오고 있고, 버스 기사는 내 마음을 모르는지 느릿느릿하게 운전을 한다. 결국 E코스 입구에 도착하니 5시 반. 무리라고 판단하여 그대로 버스를 타고 나왔다. 10시간의 버스에 몸은 지치고, 공원에 들어오기까지 했는데 못 본다는 사실에 너무 실망했다. 그대로 공원을 나가는 도중 배를 발견했다. 폐장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난 그 한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로 하고 배를 타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폐장 시간까지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7시에 공원을 나왔다. 그런데 공원에서 나와보니 길에 다니는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고, 전화기도 안 터지고, 안내데스크엔 아무도 없고, 이 도로 한 복판에 나 혼자인 것이다. 숙소까지는 15km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날이 어두워져서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거리다. 그래서 큰길로 나와 과감히, 난생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보았다. 엄지 손가락을 도로 쪽으로 피고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웃으면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자동차는 서주지 않는다.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나 좀 태워주소"라고 손짓을 해도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 1시간쯤 흐르고 포기 직전까지 갔을 무렵에 다행히 빨간색 승용차가 내 앞에 섰다. 기쁘고 놀란 나머지 문을 열고 내 목적지를 말했다. "Korenica" 내 숙소가 있는 작은 마을.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히치하이킹에 성공해 차를 얻어 타고 숙소로 가게 되었다.  나를 태워준 차 주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직원이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아서 부럽다고 했더니, 그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크로아티아의 경제가 안 좋다며 숙소까지 가는 20분 동안 크로아티아 경제 이야기를 하였다. 숙소 앞에 도착을 해서 나는 또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 나하고 서야 그를 보내주었다.


 Thank You So Much, Hvala!

히치하이킹을 했던 도로,  좋은 경험이였다.

다음날, 눈을 뜨니 어느새 아침 7시다. 다시 숙소를 떠날 채비를 하고 가방을 쌌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빗속을 뚫고 플리트비체로 다시 향한다. 전날 사둔 티켓을 들고 입장했다. 공원 지도를 보면서 신중히 코스를 골랐다. 모든 길을 발로 걷는 K코스와 코스의 일부를 배를 타는 H코스 사이에 고민하다가 H코스로 결정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들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 부탁도 해보고 찍어주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서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아직 반도 안 왔는데 신발이 젖어서 굉장히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젖은 채로 걸었다.

비가 와서 고생 좀 했다

반쯤 걸었을까? 길은 끊기고 배가 보였다. 줄을 서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배에는 나 말고도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들이 있었는데 배가 반쯤 건넜을 때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자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랜지,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나는 온종일 빗속에서 걷는 동안 우울하고 짜증도 났는데 그들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배에서 내려 바로 앞에 있는 라운지에 들어가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신발은 젖고,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힘을 내어 빨리 걷기로 했다.

배에 타서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들이 재밌었다

플리트비체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고, 폭포는 웅장하고, 오리도 둥실둥실 떠다닌다. 이런 곳에 사는 물고기는 기분이 어떨까? 다음 생에는 플리트비체의 물고기로 태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맑은 날의 플리트비체도 상상해본다. 비가 오는 플리트비체도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맑은 날에도 이 에메랄드빛 호수를 보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동굴 비슷한 게 보인다. 동굴 안에는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다. 계단을 오르니 높은 곳에서 호수와 폭포가 한눈에 보인다. 조금 더 걸어보니 눈앞에 믿기지 않을 광경이 펼쳐진다. 플리트비체는 신비로웠다. 더 이상 비도 젖은 신발도 나를 짜증 나게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앞에 이 아름다운 광경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봤는지 엄마가 알면 분명 부러워할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허전했다. 나는 분명 지금 행복하다. 그런데 엄마는 과연 지금 행복할까?

기쁨과 서글픈을 동시에 가져다준 소름돋는 플리트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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