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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Apr 04. 2018

홍보와 선전의 차이

도대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임자가 그 자리 지킬 자격이 있느냐는 말이야!


초조하게 줄담배를 태우던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계원이 들어오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떨이를 집어던질 기세에 흠칫 놀란 김계원은 머뭇거리다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박정희는 정적이 없었다. 아니, 정적이 없도록 관리해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그 역할을 했다. 유력한 야당 인사들에게 먼저는 뇌물이 갔고, 후에는 회유와 협박이 갔다. 나이 많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박정희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두각을 나타낸 몇몇 젊은 정치인들에게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박정희를 분노케 했다. 박정희를 혐오하는 젊은 정치인들. 그들은 늙은 너구리 같은 원로의원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돈 몇 푼에 팔아먹는 것이 얼마나 파렴치한 짓인지 알고 있었다.


이에 부응하듯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젊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40대 기수론. 법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최연소 연령의 40대 정치인들에게 전국민적 열망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박정희는 중정부장 김계원을 지휘해 40대 기수론을 잠재우려 했다. 뇌물을 줘서 원로의원인 신민당 총재 유진산이 신민당 대선 후보로 나오도록 부추긴 것이다. 그러나 뇌물은 통하지 않았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진산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김영삼, 이철승, 김대중. 40대의 젊은 정치인 셋은 국민들이 주목한 가운데 뜨겁게 전당대회를 치러냈다. 특히 김대중은 미국의 전당대회를 연상케 하는 캠페인과 연설로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결국 신민당 대선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왼쪽부터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박정희는 위기감을 느꼈다. 대선에서 유진산과 붙었다면 적당하게 연극 같은 선거를 치르고 안정적으로 7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유진산 같은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중은 진지하게 대통령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박정희가 이런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정해져 있었다.


“이후락을 불러! 임자는 이제 그만둬. 이후락이 보고 중앙정보부를 맡으라고 해!”


이후락의 별명은 제갈 조조였다. 제갈량의 지모와 조조의 권모 모두 갖추었다는 의미였다. 이후락은 일처리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중정부장으로 있는 동안 반정부 인사의 의문사 사건이 많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중정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드러난 적이 없었다.


이후락은 박정희를 신격화할 정도로 대단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주일대사로 있을 때는 오찬에 맞춰 박정희가 좋아하는 싱싱한 일본 초밥을 비행기로 공수해 바칠 정도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후락의 박정희 신격화가 괴벨스의 히틀러 신격화를 닮았다는 것이다. 이후락은 부하들에게 곧 잘 박정희를 믿는 박정희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북유럽 신화의 초인, 계시록의 재림 예수에 빗대어 말하길 좋아했었다.



김대중과 이후락


1971년 4월 18일 일요일. 장충단에서 김대중 후보의 연설이 있던 날. 이 날, 박정희 정권은 향토예비군 비상소집을 실시했다. 공무원은 전원 야유회를 실시했고, 야유회 불참은 결근 처리를 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장충단에는 약 80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인파가 몰렸다. 박정희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 새로운 젊은 대통령, 김대중을 바라고 희망하는 인파였다. 후보 김대중은 이날 연설에서 중앙정보부를 공격했다.


“오늘날 이 나라는 말만 민주주의입니다. 백성 민(民), 임금 주(主) 백성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백성에게 선거의 자유가 없습니다. 야당 유세장엔 나오지도 못하고 가더라도 박수를 치지 못합니다.

중앙정보부는 언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를 지휘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분열시키고 심지어 여당조차도 박정희 1인 독재에 반대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중략)

중앙정보부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학자와 문화인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에 개입해서 모든 이권에 간섭합니다. 요즘도 경제인들을 수백 명 불러다가 “김대중에게는 돈을 주지 말아라. 만일 돈을 주었다가는 너희 사업을 아주 망쳐놓겠다”라고 협박해서 절대로 안 준다는 각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각서를 썼다는 말도 밖에 나가서 안 하겠다는 각서를 또 한 장 받고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 공산당을 잡으려는 중앙정보부나 전국의 정보경찰들이 지금 공산당을 잡고 있습니까? 내가 전국을 다녀보니까 그 사람들이 밤잠 안 자고 잡으러 다니는 것은 공산당 간첩이 아니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김대중의 연설에 국민들은 공감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포와 억눌린 삶이 한 사람의 유력한 정치인의 입술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대중들은 김대중을 연호했다. 이에 대한 박정희의 대처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그 단순함은 1971년 4월 22일 광주에서 있었던 연설의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공산당과 대결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공산당과 입으로 싸워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얼핏 김대중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아니다. 김대중이 연설에서 말했던, 공산당을 잡는다면서 김대중을 잡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말 잘하는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것이 박정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다. 박정희는 자신의 입으로는 김대중의 입을 이길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후락이 내놓은 비책은 선전술이었다. 박정희의 입이 아닌 남의 입으로 승부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모함으로 사람들이 김대중을 미워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남의 입으로 하는 모함은 직접적인 박정희 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김대중의 표를 줄일 수 있는 기막힌 묘수였다. 이후락은 선전 조직을 만들어 공작 활동을 지휘했다. 선전 조직원들은 민중들 사이로 파고들어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전라도 빨갱이들이 빨갱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번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를 피바다로 만들려고 전라도 놈들이 벼르고 있다더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 공무원들은 모가지가 다 잘리고, 경상도 기업들도 전부 도산한다.”


경상도내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 벽에는 “호남인이여 궐기하라!”는 제목의 벽보가 붙었다. 모두가 전라도 사람이 붙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후락의 선전 조직이 행한 일이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유언비어가 퍼진 상태에서 자극적인 벽보가 붙자 경상도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는 고스란히 김대중에게 향했다.



이후락은 비밀 조직을 지휘하며 흑색선전 Black Propaganda을 꾸준히 전개하는 동시에 언론을 통해서는 회색선전 Gray Propaganda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효상 국회의장이다.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으로 천년만년의 임금님을 모시자. 야당 후보가 이번 선거를 백제, 신라의 싸움이라고 해서 전라도 사람들이 똘똘 뭉쳤으니 우리도 똘똘 뭉치자. 그러면 154만 표 이긴다”

- 이효상 국회의장 발언, 중앙일보 1971.4.22


반면, 백색 선전 White Propaganda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언론에서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비판하고 경제발전에 신경 쓰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날 호남지방 첫 유세를 편 (중략) 박정희 후보는 일부 야당 인사들이 지연 등 전근대적인 요인을 악용. 지역감정을 선동함으로써 국민의 단결을 파괴하려고 들고 있으나 역사의 진행과 국민의 혜안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박 후보는 지역 공약 몇 가지를 제시했다.
1. 전주~순천, 순천~부산, 목포~순천 간 고속도로 건설
2. 영산강 유역 개발 76년까지 완성
3. 우유 1만 톤 처리 기공 공장 건설
4.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농수산 부분 자금, 전남에 제 1순위 부여
5. 전남 광주에 50억 본 생산 능력의 연초제조창 건설”

- 매일경제 1971.4.22


박정희가 7대 대선에 투입한 자금은 강창성 당시 중정 차장보의 증언에 의하면 약 700억 원(당시 국가예산의 13%)이었다. 그중 상당 액수가 이후락이 지휘한 중앙정보부의 선전 공작 활동에 사용되었고, 덕분에 박정희는 초반의 김대중 상승세를 누르고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7대 대선은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김대중과 중앙정보부 이후락의 대결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담이지만, 박정희 정권은 선거에 이겼음에도 김대중에 대한 부담이 컸는지 약 2년 뒤인 1973년 8월 8일에 중앙정보부 주도로 김대중 납치를 시도했다.)



선전이란 무엇인가


이후락에게는 일련의 공작 활동으로 대중의 생각을 마비시키거나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의 근거를 근대 최초로 체계화시킨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선전 Propaganda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 Edward Bernays였다.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권력을 실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라 할 수 있다."

- 에드워드 버네이스,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선전을 체계화시켰다면, 선전의 위력을 전 세계가 실감하게 만든 인물은 나치 NAZI의 선전부장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였다. 괴벨스는 버네이스의 저서들을 읽고 감탄하여 그를 스승으로 떠받든 사람이었다. 나치의 선전부장 자리도 본래는 버네이스를 영입하려 했으나 고사하는 바람에 괴벨스가 맡게 된 것이었다. 버네이스의 선전술을 전수받은 괴벨스는 단 하나의 일관된 전제로 나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대인은 악마다


유대인이 악마라는 선전은 헤로데 왕조 Herodian dynasty시절 유다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역사적 사실과 당시 유럽 전역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치가 독일 공산당과 경쟁할 때는 "유대인이 공산주의로 독일을 삼키려 한다."는 주장으로 공산당에게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지만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가 유대인이라는 상관없는 사실 때문에 '공산주의자 = 유대인'이라는 공식이 독일 대중에게 먹힐 수 있었다.


나치가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서 1당 독재의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는 "유대인이 독일 경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발휘했다. 나치는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의 경제대공황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모두 유대인의 탓으로 돌렸다. 역시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으나 독일 내 은행과 백화점 대다수가 유대인 자본으로 세워졌다는 사실 때문에 독일 대중은 나치의 주장을 믿고 권력을 내어줬다.


나치의 소련 침공과 총력전에는 시온 의정서 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가 동원되었다. 시온 의정서는 러시아 황제파가 볼셰비키 Bol'sheviki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꾸며낸 문서로, 볼셰비키 혁명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나치에서는 "소련은 유대인의 꼭두각시 국가이므로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괴벨스의 나치는 '유대인은 악마다'라는 전제하에 치밀한 공작 활동으로 독일 민중에게 전쟁의 동기를 부여했다. 괴벨스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고통의 원인이 유대인 때문이라고 간결하게 말해주었다. 주장의 근거 중 1%가 사실이고 99%가 거짓이어도 독일 민중은 나치의 선전을 믿었다. 유대인은 독일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나치가 저지른 잔혹한 전쟁 범죄의 원동력은 괴벨스의 선전에 의해 조작된 유대인을 향한 증오와 혐오였던 것이다.


호남인은 빨갱이다


이후락은 일제 식민지, 이승만 독재, 한국전쟁, 박정희 독재의 연이은 여파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고통의 원인이 전라도 빨갱이 때문이라고 간결하게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북한과 손을 잡았다고 믿었다. 전라도 빨갱이가 혼란을 일으켜 박정희의 경제발전 노력을 방해하며, 남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 중심의 농, 축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했었다.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한국에 요구한 것은, 낮은 경제력 때문에 남한이 공산권에 흡수되는 것을 우려한  미국이었다.


공화당에는 선전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은 일방적인 원조 정책이 원조를 받는 국가의 자생력을 해친다는 한계를 알고, 장면 내각 때부터 수출 중심의 제조업 육성 및 경제 성장 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박정희는 미국 측의 주장을 무시하다가 미군 철수 압박에 못 이겨 미국이 상세하게 설계한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호남인들은 빨갱이도 아니고 경제 발전을 방해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방해자는 한국을 돼지 키워서 수출하는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였다.


이러한 진실을 외면한 채 이후락은 "호남인은 빨갱이다"라는 일관된 전제로 남한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빨갱이 호남인의 탓이라 선전했다. 박정희는 경제의 신이자 빨갱이를 척결하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선전했다. 그 결과 호남인을 미워하고 박정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후락의 선전에 사람들이 놀아난 것이다.


선전은 프레임을 전제로 하는 일관된 주장이다. '유대인은 악마다', '호남인은 빨갱이다'라는 거짓 전제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세계관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라면, 프레임은 그 관점을, 다시 말해 나의 사고방식을 남이 정해주는 것이다. 프레임은 단어를 연결시키는 것으로 작동한다. 앞서 문장을 예로 들자면 '유대인=악마', '전라도=빨갱이'로 연결시키면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거짓 프레임을 전제로 일관된 주장을 이어가면 사람들은 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선전이다.


이후락이 선전을 통해 노린 것은 무엇일까? 박정희의 당선이다. 민중들이 유대인을 미워할수록 나치의 지지율이 올라가듯이, 당시 호남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전부 김대중을 욕하며 박정희를 찍었다. 선전을 통해 박정희와 민중 사이의 관계가 향상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홍보다. 홍보 Public Relations는 대중과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홍보 활동에는 선전도 포함된다. 선전 이외의 잘 알려진 홍보 수단으로는 스포츠팀 후원, 기부, 매스커뮤니케이션, 사회봉사 등이 있다.


선전이 무조건 거짓을 의미하거나 정치 공작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1920년, 머리망을 판매하던 회사 베니다 헤어 넷 Venida Hair Net은 버네이스에게 판매 촉진을 의뢰했다. 버네이스의 솔루션은 "긴 머리는 위험하다"는 프레임으로 선전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여성들의 긴 머리가 공장 기계에 휘말려 들어가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버네이스 선전의 요지였다. 버네이스의 선전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머리망 판매는 급증했다. 심지어 몇몇 주정부에서는 공장 근로자의 머리망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프레임은 강력하다. 프레임을 기반으로 일관된 주장을 펼치는 선전은 대화나 논리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 선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견을 달면 나조차 프레임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했을 때 프레임에 감염된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보라.


"너도 빨갱이지?"

"아이고, 빨갱이한테 물들었구나. 빨갱이는 말로 못 이긴다. 빨갱이한테 물들면 안 돼~"


프레임은 강력하지만 무적인 것은 아니다. 프레임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프레임을 기반으로 선전을 펼치는 세력의 주요 메신저나 리더를 조롱거리로 만들면 된다. 이것에도 프레임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메신저=무능한 바보', '메신저=천박한 막말꾼'이라는 프레임으로 꾸준히 선전하는 것이다. 이때 유의할 점은 지지자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반발 때문에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부수는 선전은 지지자 스스로가 부끄러워 지지를 철회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만 한다.


본 글에서는 쉬운 이해를 위해 정치를 예로 들었으나, 홍보와 선전 활동은 정치보다 오히려 기업들 간에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생각의 틀을 바꾸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붇는다. 테슬라를 보라. 전기차를 우주로 보내는 생산성 제로의 일에 일천억 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


화성으로 향하는 테슬라 로드스터


모든 기업이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분산된 목표, 잘못된 목적, 결과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의미 없이 돈을 버린다. 역사적 사례와 사회 과학적 성취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추측이나 기분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홍보나 선전을 치밀하게 계획할 수 있는 전략가인가? 아니면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필부인가? 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개념부터 제대로 소화하는 것이 좋다. 선전이 뭔지 홍보가 뭔지 개념도 모르는데 무슨 전략이 나올 수 있겠는가? 개념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의 시체를 거름 삼아 탄생한 필승의 정공법이 바로 개념이나 정의라 불리는 것들이다. 잊지 말라. 원칙이 없이는 변칙도 없다.


이 글을 읽은 후에는 주변 기업들의 선전 활동을 관찰하고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분석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전은 열심히 하는데 정확히 어떤 프레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인 기업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기업은 아마추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식으로 관찰을 지속하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선전에 대하여 뛰어난 통찰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이 부족하나마 당신의 성장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쯤에서 홍보와 선전의 차이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Do you see a man skilled in his work? He will serve before kings; he will not serve before obscure men." - Proverbs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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