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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May 15. 2021

혁신의 의미와 이유

점진적 혁신과 급진적 혁신

*실제 강연 및 컨설팅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Q. 직원들이 혁신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겉멋 든 친구일수록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혁신을 안 하는 평범한 회사도 충분히 멋지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S. 혁신은 생각하시는 것만큼 특별하지 않습니다. 혁신의 결과는 특별할 수 있습니다만, 혁신을 위해 회사가 하는 일은 매우 평범합니다.

우선, 혁신의 의미부터 명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님의 회사에서도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겠지요? 신제품 출시도 혁신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점진적 혁신 Incremental Innovation에 해당합니다.


점진적 혁신이 누적되어야만 세상을 바꾸는 급진적 혁신 Radical Innovation이 가능합니다. 아이폰을 예로 들어 볼까요? 아이폰은 외계인을 고문해서 나온 신기술이 아닙니다. 3.5인치 LCD,  임베디드 DRAM, WIFI, 블루투스 모두 이미 존재했던 기술입니다. 터치스크린에 적용된 정전식 터치와 멀티 터치는 핑거웍스 FingerWorks라는 회사가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온 기술입니다.


핑거웍스를 인수한 애플은 2007년 출시한 아이폰 1세대에 멀티 터치를 적용했습니다. 덕분에 아이폰의 UX는 신세계였죠. 줌인/아웃을 버튼을 눌러서 하느냐, 단지 두 손가락을 오므리고 펴는 걸로 하느냐의 차이는 대단히 컸습니다. 아이폰의 앱은 버튼을 덕지덕지 붙일 필요 없이 간단한 제스처로 작동할 수 있었죠. 애플은 마우스에도 멀티 터치를 적용해서 2009년에 신제품 매직 마우스를 출시합니다. 2010년에는 마우스를 대체할 신제품 매직 트랙패드를 내놓습니다. 매직 트랙패드는 또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세 손가락으로 트랙패드를 스와이프 하면 듀얼 모니터가 필요 없을 정도로 편하게 두 개의 작업 공간을 넘나들 수 있죠. 이처럼 신제품을 통해 개선 수준의 기술이 누적되다보면 급진적 혁신의 기회가 열립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영리하게 조합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변혁을 일으키는 위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신제품 개발이 어떻게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제품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직원들이 개발에 참여한 신제품이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그 반응을 직원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우려하셨던 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Q. 신제품으로 혁신이라니 저에게는 너무 거창하게만 들립니다.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뛰어난 신제품을 만들려면 연구개발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며 혁신하는 건 여유로운 회사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S. 혁신은 오히려 여유롭지 않은 회사에 필요합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월스트리트에서는 애플이 6개월 안에 무조건 파산할 거라 호언장담했었죠. 애플은 위기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잡스는 아이맥, 아이팟 등 신제품을 이어오다가 2007년에 이르러 아이폰으로 급진적 혁신을 달성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유산 덕분에 지금의 애플은 파산과는 거리가 먼 회사가 되어버렸죠. 2020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성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은 혁신을 위해 R&D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을까요? 아닙니다. 최근에는 애플의 R&D 비용이 급증한 경향이 있지만, 잡스가 살아있을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혁신은 R&D 비용과 상관없다.
애플이 맥을 출시했을 때, IBM의 R&D 비용은 애플의 100배 이상이었다.
혁신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다.
혁신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당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받아들일지에 관한 것이다.


- 스티브 잡스, 1998년 Fortune 인터뷰 중에서


연구개발비에 얼마나 쓸 수 있느냐 보다는, 얼마나 세상이 원하는걸 제대로 캐치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애플 같은 큰 회사만 혁신이 가능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코카콜라는 작은 약국에서 내놓은 신제품이었습니다. 최초의 코카콜라 로고는 약국의 경리 직원이 만든 거였고요.


작은 붕어빵 가게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점진적인 혁신을 하는 게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붕어빵 반죽을 바꿔보는 겁니다. 붕어빵에 팥 대신 다른걸 넣어보는 겁니다. 고객의 피드백을 체크하면서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다보면, 노점에서 시작한 붕어빵이 편의점, 마트, 백화점, 디저트 프랜차이즈 등등 오만군데서 팔리며 대박을 칠지도 모릅니다. 붕어빵으로 그게 가능하겠냐고요? 이거 실제 사례입니다. "숙대 자색 고구마 붕어빵"을 검색해보세요. 그게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고, 얼마나 많은 중견기업들이 카피해서 자사 상품으로 팔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노점상이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 든 간에 혁신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건에 맞게 하는 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Q. 업력이 긴 회사 중에는 그래도 꾸준히 잘 팔리는 효자상품이 있어서 그 덕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팔리는 상품이 있다면 그 상품이 더 잘 팔리게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회사일수록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데, 괜히 신제품 개발한다고 호들갑 떨다가 잘 팔리던 상품까지 안 팔리면 어떡하나요?


S. 잘 팔리던 상품은 무조건 안팔리게 되어있습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어떤 상품이든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수요가 끝나면 그 상품과 관련된 비즈니스도 수명을 다합니다. 생활필수품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신제품이나 신기술에 대체되어 수명을 다합니다. 이러한 제품의 수명을 관리하는걸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 제품 수명 주기 관리)이라 합니다. 


상품이 이노베이터나 얼리어답터 같은 전기 수용자의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입소문을 기반으로 대중화되면 히트상품이 됩니다. 전기 수용자의 입소문이 퍼지기까지 판매가 정체되는 구간을 캐즘(Chasem, 지질학 용어, 지각의 단절을 의미)이라 하고, 캐즘까지의 영역을 전기 시장이라 합니다. 이후 대중화되고 판매량이 급증하는 구간을 주류 시장, 판매량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구간을 후기 시장이라 합니다. 후기 시장 이후에 제품은 수명을 다하게 되는데, 이때까지 제품의 판매량을 그래프로 그리면 정규분포표가 됩니다.


제품의 생애는 정규분포표를 그리며 끝난다


PLM의 개념을 모르는 기업의 수명은 제품의 수명과 궤를 같이합니다. 후기 시장이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 후반부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잘 팔리던 히트 상품이 안 팔리니까 전성기 때처럼 더 팔리게 하는데에 자원을 낭비하다가 제품의 추락과 함께 동반 추락하는 기업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PLM을 아는 기업은 자사의 상품이 판매량 최고치를 경신하며 팔려나갈 때, 그 이익을 신제품 개발에 투자합니다. 분기마다 판매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제품의 품질, 가격, 타깃 등을 변경하여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합니다. 이를 리쥬브네이션 전략 Rejuvenation Strategy이라 합니다. 리쥬브네이션 전략이 불가할 경우 가장 효과적으로 재고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를 하베스트 전략 Harvest Strategy이라 합니다. 리쥬브네이션 전략과 하베스트 전략에서 발생한 이익 역시 신제품 개발에 투자합니다.


결국 신제품을 통한 지속적인 혁신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입니다. 혁신은 단순히 위대하고 멋져 보여서 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오래오래 장수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활동이 혁신입니다. 정말 지속적인 혁신 노력이 기업의 장수와 상관이 있을까요? 일반 기업과 혁신에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혁신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맥킨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3년 기준 일반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15년입니다. 패스트 컴퍼니에서 발표한 60대 혁신 기업의 평균 수명은 27년입니다. 포브스는 2011년부터 혁신 프리미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혁신 프리미엄은 시가총액과 순현재가치 Net Present Value 간의 차이로 계산됩니다. 순현재가치는 현재의 투자로 예상되는 미래 현금 수익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입니다. 포브스가 2013년 발표한 100대 혁신 기업의 평균 수명은 50년입니다. 이중 백 년 이상된 기업은 18개입니다.


혁신의 결과는 특별하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의 활동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평범한 활동으로 점진적 혁신이 누적되고, 점진적 혁신을 잘 활용하면 급진적 혁신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혁신은 일부 기업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일상이 되어야 할 평범한 활동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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