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권한, 책임, 직급, 조직구조
*실제 강연 및 컨설팅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결재권자는 일의 주관자(관리자이자 책임자)입니다. 결재는 결재권자가 일의 모든 내용을 확인했고 문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일에 문제가 있다면 결재권자가 일을 반려해야 합니다. 일에 문제가 있음에도 발견을 못했거나, 발견을 했음에도 결재했다면 책임은 결재권자에게 있습니다. 결재권이 사장에게만 있다면, 누가 그 일을 했든 사장과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장이 모든 일을 꼼꼼히 검토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결재권자가 책임을 지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이유를 명확히 알려면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귀족 치하에서 핍박받던 농노들이 앙시앵 레짐(구체제, Ancien Régime)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 산하의 노동자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사업장과 공장에 몰려드는 농노들의 낮은 숙련도를 극복해야만 했고, 그래서 채택한 방법이 고숙련자가 저숙련자를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족의 치하에서 관습이나 혈통의 지시를 받던 농노들은 부르주아 산하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계약의 지시를 따르게 됩니다. 계약의 내용은 고숙련자인 상사의 지시대로 일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상사의 지시대로 일했다는 증거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결재 시스템입니다.
결재로 일하는 체제를 뷰로크라시(관료제, Bureaucracy)라 합니다. 산업혁명(1760~1820) 당시 뷰로크라시 체제의 공장에서 고숙련자를 반장(Foreman)이라 하는데, 요즘도 10여 명 내외를 관리하는 생산직 관리자를 반장이라 부릅니다. 동급의 사무직 관리자는 과장(Supervisor)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회사는 결재권이 없는 과장 미만의 사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결재를 받아가며 일을 배우고 성장할 저숙련자들, 일을 결정할 권한도 없는 사람들에게 책임 운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옳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회사가 작아서 사장 단독 결재가 가능하지만, 성장에 맞춰 결재선을 조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OO 담당자가 10명 정도가 되면, 사장 대신 관리할 과장을 임명해야 합니다. 사장은 OO관리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과장을 세웠다면, OO과 관련하여 대표가 결정했던 권한을 과장에게 위임해야 합니다. 권한이 없으면 책임도 없고 결재도 할 수 없습니다. 위임하려면 물론 조건이 필요합니다. 위임하는 영역에 한하여 사장보다 일을 잘해야 합니다. 최소한 사장만큼은 해야 위임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과장을 세우려면 유능한 직원을 과장급으로 성장시키거나, 과장급 인재를 새로 채용하여 검증 후 세워야 합니다.
과장이 관리하는 OO 조직은 OO과라고 부릅니다. OO과가 조직되면 동시에 OO 결재선도 조직됩니다. OO 담당자는 과장에게 결재를 받습니다. 과장은 OO과 내의 모든 일을 검토하여 잘못된 일은 반려합니다. OO 담당자는 반려의 과정을 통해 일을 배우고 성장합니다. 과장은 사장에게 결재를 받습니다. 사장은 모든 일을 검토하지 않습니다. 사장은 위임하지 않은 일들을 검토합니다. 단, 문서의 요약을 확인했을 때 문제가 보이거나 중요한 사안일 경우에는 위임한 내용일지라도 검토합니다.
우선은 직급(Job Grade)과 직책(Duty Responsibility)의 차이부터 아셔야 합니다. 사장에게 조직의 일부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서 사장 대신 결정을 내리고 관리하는 책임을 직책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부서(Department)를 관리하는 부장(Department Manager)은 직책인 동시에 직급입니다. 관리하는 부서가 없는 부장은 직책이 없는 직급입니다. 사원과 대리를 파트너로, 과장과 차장을 파트장으로, 부장을 팀장으로 이름만 바꾼 건 직급의 파괴가 아니라 단순한 통합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팀장을 부장의 번역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부장은 직급도 되고, 직책도 될 수 있지만 팀장은 본래 직급이 될 수 없습니다. 팀장은 직책입니다. 부장은 뷰로크라시 조직의 직급이자 직책입니다. 팀장은 애드호크라시(Adhocracy) 조직의 직책입니다.
뷰로크라시는 분업으로 일합니다. 예를 들어 설계과에서 일이 끝나면 제조과로 일이 넘어갑니다. 설계과에 일이 많아서 고용을 늘리면 설계1과, 설계2과 식으로 과가 늘어나고, 설계부가 조직되어 설계과들을 관리합니다. 설계과에는 설계를 하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설계의 베테랑이 설계과 과장이 되어 사원들에게 일을 지시하고 결과물을 검토 후 승인합니다. 과장들의 일은 부장이 검토하고 승인합니다. 사업이 커지면 설계부, 제조부 등과 같은 부서들이 모여서 사업부(Division)가 조직될 수 있습니다. 사업부는 본부장(Division Director)이 관리합니다.
뷰로크라시는 각 과와 부서가 하나의 기능을 담당하며 분업으로 일하기 때문에, 부서 하나만 잘못되어도 일의 흐름이 끊겨서 병목현상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사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부장들은 자기 영역의 베테랑이지만 다른 부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시 빠르게 포착하기 어렵고 해결 능력도 부족합니다. 때문에 뷰로크라시 조직은 부서를 두루 감독하는 본부장(여러 다양한 부서를 거쳐 성장한) 혹은 사장이 꼭짓점이 되는 피라미드 형태가 될 수밖에 없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한 상명하복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직적인 문화가 적합합니다.
애드호크라시는 협업으로 일합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애드호크라시는 Task Force 형태로만 가능했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사적으로 애드호크라시를 채택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애드호크라시가 가능하려면 노동집약도가 낮아야 합니다. 예를들어 1970년대에 설계부서 100여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CAD 설계사 한 명이 할 수 있습니다. CAD 설계사 한 명, 외주생산 관리자 한 명, 마케터 한 명이 모이면 하나의 사업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기능의 전문가가 하나로 조직된 것을 팀이라 하고, 과나 부서 대신 수많은 팀으로 조직된 체제를 애드호크라시라 합니다. 애드호크라시 조직에서 팀을 관리하는 사람이 팀장입니다. 팀장은 직급이 아니라 직책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팀장을 부장과 비슷한 직급으로 쓰는게 현실이기는 합니다.
뷰로크라시에서는 하나의 기능을 하나의 부서가 담당합니다. 때문에 뷰로크라시를 기능 단위 조직이라고도 합니다. 애드호크라시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팀이 담당합니다. 때문에 애드호크라시를 팀제 조직이라고도 합니다. 뷰로크라시에서 직위(Job Potion)는 직급과 동의어일 때도 있고, 직급이 너무 많아지면 직급을 묶는 단위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장 1호봉', '과장 2호봉' 직급은 '과장' 직위로 묶입니다. 뷰로크라시에서 직위는 사원부터 사장에 이르는 수직선 사이의 어느 한 지점입니다. 애드호크라시에서 직위는 직급이라는 y축과 직업이라는 x축이 만나는 좌표입니다. 애드호크라시의 직급은 크게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로 나뉩니다. 스페셜리스트의 직급은 일반적으로 주니어, 시니어, 리드의 3단계입니다. 제너럴리스트의 직급은 일반적으로 애널리스트, 매니저, 디렉터의 3단계입니다. 직업은 마케터, 디자이너 같은 겁니다. 직급과 직업을 합치면 '마케팅 매니저', '시니어 디자이너' 등 애드호크라시에서의 직위가 됩니다.
직급 파괴는 뷰로크라시의 수직 직위 구조가 애드호크라시의 좌표 직위 구조로 바뀌는 정도의 파격에 어울리는 용어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는 수평적인 문화를 원하신다면 애드호크라시를 채택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단, 애드호크라시는 회사가 보유한 구성원, 자원 및 기술의 수준이 노동집약도를 현격하게 낮출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사람 여러 명이 하나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뷰로크라시로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뷰로크라시 체제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위임을 하신다면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