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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준 Jun 13. 2021

OKR은 그래서 실패한다

정성적인 목표와 정량적인 핵심 결과

*실제 강연 및 컨설팅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Q. OKR 도입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처음에는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OKR 자체가 숙제처럼 느껴지더군요. 해야 할 필요성도 잘 모르겠습니다. 직원들도 목표나 핵심결과 설정을 많이 어려워하고, OKR을 문서 잔업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OKR 도입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제 주변에 다른 대표님들도 OKR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던데, 이게 정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게 맞기는 한 걸까요?


S. 실무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목표 관리는 기업을 경영하는 것 그 자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존 도어(John Doerr)가 확립한 OKR의 전신은 인텔의 창립자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1968년에 만든 IMBO(Intel MBO)였습니다. IMBO의 오리지널은 MBO였고, MBO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남긴 다음의 명언으로부터 탄생했습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목표에 의한 경영을 한다(management by objectives)”는 것을 의미한다.


- 피터 드러커, 1954년에 발간한 경영의 실재(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MBO는 목표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의 앞글자를 딴 약어입니다. 혹자는 MBO와 OKR이 다르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IMBO가 인텔의 MBO라면, OKR은 구글의 MBO입니다. IMBO와 OKR 모두 피터 드러커의 MBO, 즉 목표에 의한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프레임워크(Framework)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기 위해 모인 것이 회사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려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표 관리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이 자동으로 될리는 없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노력과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회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계층 사이의 단절, 여러 사람의 업무의 차이에서 오는 비전과의 괴리, 경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 의한 인지 편향 때문에,) 목표를 관리하지 않으면 목표를 상실하고 사업이 좌초되기 쉽습니다. OKR은 경영이 자동으로 될 리가 없기 때문에 회사가 꼭 노력을 기울여 실행해야 하는 특별한 수단인 것입니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OKR(Objective Key Results)은 크게 두 가지, 정성적인(Qualitative) 목표(Objective)와 정량적인(Quantitative) 핵심 결과(Key Results)로 구성됩니다. OKR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패는 정량적인 핵심 결과와 관련이 깊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데이터로 일하는 능력이 없는 회사가 OKR을 도입하면, 핵심 결과를 측정할 수 없고 OKR에도 실패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게가 되기'라는 목표가 있다면, 데이터화 능력이 없는 가게는 각자 개인의 편향을 기반으로 한 '촉'으로 핵심 결과를 정합니다. 핵심 결과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분기가 지나서 열심히 회의를 해본 후에 또다시 어림짐작으로 핵심 결과를 정합니다. 이런 식으로 매번 핵심 결과가 새로워질 뿐 직원들은 어떤 성취감도 못 느끼고, 가게도 성장은커녕 일하는 데에 혼란만 가중됩니다. 이게 반복되다 보면 OKR의 필요성에 의문이 생기면서 쓸데없는 문서 잔업으로 느끼게 됩니다.


반면, 데이터화 능력이 있는 가게는 관리 회계가 잘 되어있습니다. 프로젝트 · 과업 · 메뉴 등의 단위로 수익률이 측정됩니다. 메뉴별로 주 고객이 어떤 세그먼트에 속하고, 메뉴의 생애주기가 어떤 상태에 있고, 타깃 · 품질 · 가격 중 특정 요소에 변화를 주면 생애주기를 연장할 수 있는지 여부를 데이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루틴의 여부와 무관하게 프로젝트나 과업별 소요시간이 측정됩니다. 어떤 일의 소요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인하우스와 아웃소싱중 어떻게 처리하는 게 효과적인지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에 친숙하지 않은 경우, 일반적으로 타깃 고객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단순히 모두가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두에게 많이 팔리면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반면, 데이터화 능력이 있는 경우, 누구를 만족시켜야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핵심 고객들이 우리 가게의 편안한 분위기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테이크 아웃 속도가 느린 것에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고, 개선으로 어느 정도의 매출 증대를 가져올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데이터에 친숙한 가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출 기여도가 가장 높은 건 체류시간이 긴 고객들의 반복적인 음료 주문이다. 데이터를 보면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다시 음료를 주문하는 경우도 잦다.", "테이크 아웃 처리 속도가 느린 이유는 어느 업무에서 병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등의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우리 가게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고객들을 위해 몇 월까지 식사 메뉴를 새롭게 론칭하고, 론칭 한 달 안에 얼마의 판매고를 달성하자", "업무 프로세스 개선으로 테이크아웃 처리 속도를 몇십 퍼센트 높이자" 식의 근거가 있는 정량적 핵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OKR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데이터 친화적인 업무환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정성적인 목표는 회사에게도 직원에게도 이상적이고 매력적이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단서들은 중복과 누락 없이 쉽게 정리되어 직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직원 누구나 스스로 조합해서 핵심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비즈니스가 동작하는 데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기록되고, 관리되고, 최신 상태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직원 단위 역량과 환경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OKR은 좋은 말만 하다가 끝나는 허례허식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OKR에서 두 번째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패는 정성적인 목표와 관련이 깊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능 단위 조직구조를 가진 회사가 OKR을 도입하면, 직원들이 정성적인 목표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기 힘들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회사가 기능 단위 조직구조이기 때문에 OKR 도입에 그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기능 단위 조직은 일을 부서별로 분업해서 처리합니다. CS 부서는 고객 의견을 취합하고, 기획 부서는 취합된 고객 의견을 참고해 다음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 부서는 기획대로 디자인하고, 개발 부서는 디자인대로 개발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게가 되기", "고객이 원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게 하자" 따위의 정성적 목표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직업윤리적으로 옳은 메시지로만 들릴뿐,  머리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정성적 목표로부터 핵심 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렵습니다.


기능 단위 조직에서 직원들이 핵심 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실무와 동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기능 단위 조직에서는 기획된 대로, 디자인된 대로, 즉, 정해진대로 일합니다. 기능 단위 조직에서는 고객과 접점이 있는 부서가 따로 존재하고, 나머지 부서는 고객이 아닌 다른 부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들리면 그건 CS 부서의 일이지 다른 부서의 일이 아닙니다. 불량이 나오면 개발 부서의 일이지 다른 부서의 일이 아닙니다. 정해진대로 일하고 고객과의 접점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창의적인 핵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요?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없고, 권한의 범위도 좁은 직원들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OKR에서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직접 설정한 핵심 결과 달성에 따른 성취감인데, 기능 단위 조직은 일하는 구조 자체가 장애물이 됩니다.


지금은 CAD와 사람 한 명이 할 일을 과거에는 설계 부서에서 수십 명이 분업으로 처리했다


반면, 팀 단위 조직(애드호크라시, 프로젝트 단위 조직)은 협업으로 일합니다. 예를 들면, 마케터는 고객 이탈의 주요 원인이 광고 때문인 것을 포착하고, 디자이너는 고객 여정을 추적하며 로그를 분석하다가 UX상의 결함으로 고객이 헤매는 상황을 발견하고, 프로그래머는 지난 스프린트에서 개발된 검색 기능이 느린 속도 때문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팀 단위 조직에서는 누군가로부터 "고객이 이런 불편을 느끼더라" 식의 말을 전달받지 않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모두 고객과 직접 연결되어있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고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직접 확인합니다. 때문에 모두가 "고객이 원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게 하자"라는 정성적 목표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권한도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 자신의 일에서부터 고객에 이르는 여정을 모두 맡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목표에 대한 공감은 적극적인 핵심 결과 도출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원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게 하자"라는 정성적 목표가 있을 때, 고객과 연결된 마케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는 다음과 같은 핵심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탈할 고객들을 연관 상품 노출로 유도해서 이탈률을 몇십 퍼센트 낮추자", "여행 지역, 기간, 인원 같은 필수 정보를 미리 입력받아서, 고객에게 필요 없는 상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예약률을 십몇 퍼센트 높이자", "검색 알고리즘을 최적화하여 검색 속도를 몇백 퍼센트 높이자"


육체 노동자에게는 능률(efficiency)만 필요했다. 그것은 올바른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능력 (ability to do things right)’이다.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일은 실제로 지식 노동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앞으로 더욱 생산적으로 일하게 될 사람들과 파트너가 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작업의 수준, 난이도, 기능의 정도에 관계없이 모든 지식 근로자가 생산성 향상과 성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수행하는 작업의 일부로 짜 넣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The Essential Drucker on Individuals)에서


피터 드러커는 수백 개의 기업이 MBO를 채택했지만, 제대로 하는 기업은 수 개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피터 드러커의 MBO는 지식 노동자를 전제로 한 것이었고, 자신의 저서 매니지먼트 하권에서 지식 노동에 가장 적합한 조직은 팀 단위 조직이라 밝힌 바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MBO가 제대로 돌아가는 기업이 수백 개 중 수 개에 불과한 이유는 대다수 회사들이 기능 단위 조직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조직 구조가 어떤 형태냐에 따라서 MBO나 OKR 도입 안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물론, 팀 단위 조직이어야만 OKR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위임입니다. 직원들에게 권한이 많을수록 목표나 핵심 결과 도출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시해드린 두 가지 실패 요인을 면밀히 검토하시고, 귀사에 정성적인 목표와 정량적인 핵심 결과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일 할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OKR에 유리한 조직 구조를 갖추면 OKR을 정상적으로 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팀 단위 조직 구조를 도입하시려면 기술 및 구성원의 역량이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부서에서 인력으로 해결하던 일을 소수의 전문가와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로 대체할 수 있어야 전사적인 애드호크라시 도입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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